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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호 목차 › 붕우칼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1176호 · 2022-11-20

추수감사절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청교도들. 그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허나 거센 풍랑은 그들을 거침없이 삼켰고, 겨우 생존하여 도착한 신대륙에는 침입자에 맞서려는 원주민과 풍토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겨우 감자와 옥수수를 수확하여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린다. 편안치는 않았을지라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세계 최대의 국가, 미국을 세우셨다.

내우외환(內憂外患), 대한민국의 현 상태다. 안으로는 이태원 참사요, 밖으로는 북한의 위협적인 미사일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감사는커녕 불안과 원망이 먼저 나올 판이다. 그러나 이럴 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내가 늘 말했듯이 감사는 인생의 항암제요, 방부제요, 성장촉진제이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라고 노래하면, 하나님이 다시 무화과나무를 무성케 하시고,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게 하시며, 밭에 소출이 있게 하시고, 외양간에 소가 꽉 차게 하신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다니엘을 봐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했던 여러분의 목사를 봐라.

‘좋은 옷 못 사줘도 엄마 아빠를 사랑해.’,

‘건강하지 않더라도 당신을 사랑해.’라고 한다면 부모가, 남편이 얼마나 감동하겠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기도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고,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실 것이다(사61:3).

목회 38년,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 분이다. 그러니 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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