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10:10).
우리 교회 교인이라면 ‘연장은 쓰지 않으면 녹슨다. 은사는 쓰지 않으면 녹슨다. 깨어있지 않으면 귀신에게 잡힌다.’라고 총회장 목사님을 통하여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2~3년 정도 매일 사용하다가 2~3개월 정도 사용하지 않던 영상장비가 있다. 다시 사용하려고 했더니 장비 상태가 엉망이었다.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니까 관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점검을 받고 나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목사님께서는 기도원 대성전 뒤쪽에 있는 녹슨 중장비를 비유로 자주 말씀하신다. 그리고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내가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안다. 이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안다. 사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세계 모든 사람이 안다.”고 말했다. 매일 사용하는 것, 매일 반복하는 것에는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반복하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기도 응답이 더디 온다고 반복하기를 멈추거나 ‘매일 하는 기도, 하루쯤 쉬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복하지 않으면 곧 녹슬어 버리고 만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를 하지 않으면 기도가 잘 안되거나 막히는 경우가 많다.
숨쉬기를 멈추면 죽듯 기도도 멈추면 죽는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기도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이은성 생도
성령을 소멸하지 맙시다
‘진실아,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단다. 다시는 기도하지 않는 죄를 짓지 마라.’ 기도 중에 들려오는 주님의 온화하고 분명한 음성. 한참을 울다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때를 잠시 회상해봅니다.
“종교가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수년 전, 어떤 분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NO라고 대답하였지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평생 주를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던 저는 성령을 소멸하자 순식간에 불신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원인은 기도하지 않았던 ‘나’에게 있었습니다. 기도 줄이 끊기자 영이 어두워져 세상을 좇기 시작하였고, ‘성령을 소멸하면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는 목사님의 말씀대로 사랑과 오래 참음, 절제는 온데간데없고 부정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세상의 성공만을 좇아가던 2018년 10월 말, 저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돌아오라는 주님의 첫 번째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외상이 없었기에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개월 후 갑자기 전신에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나날이 극심해지는 고통 가운데 나를 살리시려는 ‘주님의 신호’일 수 있다는 한 줄기의 생각이 마침내 퇴사를 결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 흐른 2019년 11월. 저는 총회장 목사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오늘 설교를 꼭 보아라.’ 주님을 떠난 뒤 처음으로 접한 메시지는 ‘돌아온 자의 축복과 기쁨’. 갑자기 귀가 열리며 들리기 시작한 말씀은 저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고, 무릎을 꿇자 하염없이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님께로 다시 돌아온 저를 벌하지 아니하시고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켜주셨던 그때의 은혜와 감격은 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지금 과거의 저처럼 성령을 소멸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가는 분이 계신지요? 죄의식에 눌려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분이 계신지요? 주님께로 돌아갑시다!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이 돌아올 때 기쁨으로 맞이해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마귀를 대적하고 천국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뿐이라는 목사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김진실 사모
인생무상 (人生無常)
며칠 전 정말 좋아했던 형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수십 년 교제의 세세한 표현은 관두자. 그분은 세칭 일류학교를 나오고 집안도 떵떵거리는 명망 있는 집안의 자식이었다. 대기업의 해외 영업부장을 하던 장래가 보장돼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회사를 사직하고 퇴직금마저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무소유의 삶을 시작했다. 배고픔과 주위의 여러 어려움들을 생사를 벗어나고 싶은 열정으로 이겨나갔다. 그런 과정에 암도 걸렸지만 이겨내며 오로지 구도심으로 버텨냈던 삶이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선하며 감성적이었던 그분. 그러나 수행만은 철저한 분이셨다. 우리 집에 머물 때도 잠시도 자지 않았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 수마와 싸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분도 오십 넘어 행자승으로 불가에 의탁했다. 내가 55세에 신학교 입학한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그런 분이라면 불교계에서는 큰 스님으로 추앙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학식도, 사랑도, 자기희생도 남달랐던 분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 모든 특별함과 인격도 죽음 앞에선 홀로 버려진 나뭇잎과 같이 바람에 뒹굴고 찢겨나갈 수밖에 없으니. 세상의 모든 가치가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
인간의 힘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워낙 신념과 자기 긍지가 강한 분이라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오로지 생사 해탈의 염원으로 고행을 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린다. 존경받아야 할 모든 덕을 두루 갖췄지만 정작 생사해탈의 키를 쥐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것이 많이 아쉽다.
생사해탈과 영생은 내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갖춰도 그 길은 선택 받아 가는 길이고 의탁해야 갈 수 있는 길이다. 우리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욱하고 보잘것없는 것인데 의지 하나로 태산과 같이 덮치는 죽음의 파도를 어찌 넘을 수 있을까.
천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만 갈 수 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이광주 목사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심은
박 대위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 찾아와 그와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소연했습니다. 박 대위가 본인의 업무를 다른 이에게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위로할 뿐 박 대위에 대한 부정적인 말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타 부서의 박 대위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상급 부대의 훈련을 위해 참모단의 실무자로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깊은 지하 벙커에 들어가 밤새워가며 고생하는 일이라 모두가 기피하는 분위기였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했습니다. 훈련 준비 기간에는 홀로 임무를 감당하다가 몇 주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진행되는 본 훈련에 파트너로 박 대위가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직책상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박 대위의 당연한 임무였으나 그는 자신이 선택된 것에 대해 불평하고, 시간만 지나가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곧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박 대위가 근무 중에 상급자의 중요한 지시를 못 들은 척하며 그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하게 꾸중을 듣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스스럼없이 저에게 뒤집어씌웠고, 이전에 그를 먼저 겪었던 동료들이 저에게 하소연했던 말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박 대위에게 항의한다고 해도 다툼만 될 테니 이 상황에 적응하고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침묵하며 일을 수습했습니다. 이후부터는 박 대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교대시간과 상관없이 남아서 중요한 일은 직접 처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는데, 지켜보던 주위의 타 병과 동료들이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책임감도 없는 데다 불평불만과 짜증 섞인 말만 늘어놓는 박 대위와 함께 할 수밖에 없어 몸도 마음도 지치고 괴로웠습니다. 그 후에도 주기적으로 훈련이 있어 계속 마주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친절하게 그를 대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서부터 그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생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던 박 대위는 결국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부대장님을 찾아가 여러 핑계를 대며 자신을 훈련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계속될 줄 알았던 박 대위와의 고통스러운 시간도 그렇게 끝맺게 되었고, 저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 칭찬받을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박 대위와 비교되어 상급자와 동료들에게 더욱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그 일로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적응력을 키우고, 마음을 더 넓혀가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 억울한 누명까지 쓰는 극심한 고생 속에서도 형들과 보디발의 아내에 대해 복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부터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하나님을 의뢰할 뿐이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고통을 주는 사람과 상황을 주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이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역전시켜 주시고 그의 인생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항상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힘겨운 사람과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상황을 원망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행동하여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정명관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