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지금 당장 시작하자!
수원대 인근의 한 식당. 누군가가 돌멩이를 던져 가게 유리창을 깨뜨려놨다. 며칠이 지났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식당 문을 닫았던 탓일까? 깨진 유리창을 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 사이, 식당 유리창은 또 다른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유리창이 죄다 깨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하면, 남아 있는 유리창마저도 위험해진다! 범죄 행동을 연구하던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은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고 명명했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의외로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두 사람이 남의 집 문 앞에 내다 버린 쓰레기봉투로 인해 어느샌가 그 장소가 쓰레기가 잔뜩 쌓인 쓰레기장이 되기도 하고, 저 식당처럼 깨진 유리창을 방치해 버린 순간 누군가의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마음의 창은 또 어떨까? 당신의 관심이 떠나 이를 방치해버리는 순간, 악한 것들이 자기 멋대로 당신의 마음을 유린하고 말 것이다. 방치된 삶은 이렇게 위험을 초래한다! 내 집 앞의 잔디는 내가 관리해야 한다. 내 마음의 창 또한 내가 관리해야 한다. 더 이상 악한 것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기 싫다면 지금 당장 관리하자!
이 세상에는 여러 계산법이 존재한다. 산수에서는 ‘1+1=2’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에디슨은 ‘1+1=1’이라고 했다. 물방울 하나에 물방울 하나를 더하면 서로 엉켜 커다란 물방울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시너지 효과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1+1=3’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총회장님께서는 ‘100-1=0’이라고 가르치셨다. 사소한 실수 하나, 인격의 흠결이 결국은 그가 가진 가능성 전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변화(變化)’라는 한자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變(변할 변)’은 ‘䜌(어지러울 련)’ 자와 ‘攵(칠 복)’ 자가 만나 만들어졌다. 그리고 ‘化(될, 가르칠 화)’는 ‘人(사람 인’) 자와 ‘匕(비수 비)’ 자가 어우러져 형성되었다. 무슨 의미일까? ‘실(絲, 실 사)’ 사이에 끼어 있는 ‘말(言, 말씀 언)’을 엉켜있는 그대로 ‘어지럽게(䜌, 어지러울 련)’ 두지 말고 속되고 부정한 말들을 계속 내리쳐(攵, 칠 복) 교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비수로 찌르는 것과 같은 거친 말과 행동을 계속 내리쳐 교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성질이 변하고 본성이 바뀌는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변화, 더 이상 결단을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자!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