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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무기를 줘도 활용 못한다면 답답한 자가 누굴까?(눅12:49~53)

1171호 · 2022-10-16

실화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속에서 며칠 동안 길을 헤매다가 산중에 있는 낡은 집을 발견했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지요. 그 집에는 백발의 구부정한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할머니는 탈진한 그를 따뜻한 방안으로 들여 변변치는 않지만 정성껏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기력을 회복하고 하산한 그는 생명의 은인에게 꼭 은혜를 갚아야겠다 생각하고는 엄청난 금액이 적힌 수표를 부하직원을 통해 할머니에게 전달했습니다. 급한 일정으로 해외에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에 그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아쉬움에 집안을 둘러보던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준 거액의 수표가 문풍지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수표가 뭔지 몰라서 수표에 밥풀을 발라 바람막이로 사용한 것입니다. ‘아~ 저걸로 치료하고 잘 잡수셨으면 아직 살아계셨을 텐데~’.

돈의 가치를 모르면 돈을 줘도 이 할머니처럼 가난하고 궁상맞게 살다 갑니다. 그러나 돈의 가치를 알면 그것으로 풍요롭게, 여유롭게 살지요.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요삼1:2). 우리가 잘 되기를 하나님은 진심으로 바라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는데, 우리에게 최고의 비밀병기를 주셨는데, 우리에게 첨단의 연장을 주셨는데 그걸 들고도 사용하지 못하니 답답해하십니다. 가치와 사용법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적에게 패배하고 있고, 적에게 당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가슴을 치십니다.

‘적은 뭐고, 무기는 무슨 무기야?’ 하십니까? 여러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만 전쟁 중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전시상태에 있습니다.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혈과 육의 싸움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귀한 영혼이 살고 죽는 전쟁입니다. 우리는 늘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엡6:12). 당연히 적과 싸우려면 무기가 필요하고 성능이 좋아야겠지요. 그걸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성령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예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7). 왜냐?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셔야만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분별력을 갖게 하시니 의롭게 살게 하시고, 또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그것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게 하시니 이 세상에서 복록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는 것이 복 중의 최고의 복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니 이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무기와 연장을 들고도 귀신에게 끌려다니고, 귀신의 밥이 되어 살고 있으니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영·혼·육의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여전히 이 모양 이 꼴이면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실까요?

“아휴, 세상이 코로나 때문에 힘든 거지, 맨날 귀신이래.” “다 귀신이야? 그럼 병들 사람 하나도 없게? 그럼 못 살 사람 하나도 없게?”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 다 귀신입니다. 감기에서 암까지 병은 다 귀신이 주는 것이고요, 가난하게 하는 것도 귀신이고, 다투게 하는 것도 귀신이고, 일이 안 되는 것도 다 귀신입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요, 우리는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방해하는 귀신만 쫓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복 받아라’ 하면 기복신앙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귀신이 좋아할 소리입니다. 그 사람들 말에 속지 마세요. 그들은 돈은 좋아하면서 아닌 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독사의 새끼들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겉과 속이 다른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당하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셨고, 우리가 평화를 누리라고 징계를 당하시고, 우리를 병에서 나음을 입게 하시려고 채찍에 맞으셨는데(사53:5), 우리 때문에 가난하게 되셨는데(고후8:9) 당연히 잘 살고, 당연히 건강하고, 당연히 평안을 누리고 살아야지요. ‘부모가 고생하셔서 날 키웠는데 어찌 나만 호강할까? 나도 부모님처럼 고생해야 마땅해.’ 한다면 부모 속 터지는 겁니다.

제발 예수님을 답답하게 하지 맙시다. 하긴 늘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도 예수님을 답답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왔는데 거품을 흘리며 거꾸러지자 제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예수님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시고 무슨 일이냐 하시니, 제자들이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답답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눅9:19). 제자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을 자주 봐왔습니다. 그러면 그런 상황이 닥치면 스승인 예수님처럼 해야 하건만, 안 한 겁니다. 그러니 주님이 답답하셨을 수밖에요.

또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자 제자들이 겁에 잔뜩 질려서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5). 그들의 호들갑에 잠에서 깬 예수님이 답답함을 호소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스승을 따라 하면 됩니다. 따라 하다 보면 배우고, 더 큰 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14:12). ‘예수 이름으로 풍랑아, 잠잠하라!’ ‘예수 이름으로 귀신아, 가라!’ 명령하면 됩니다. 왜 배운 대로 안 합니까? 왜 가르쳐주신 대로 안 합니까? 여기에 무슨 이론이 필요합니까? 무슨 논리가 필요할까요?

예수님의 속을 시원케 해드리는 방법은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겁니다. 기가 막힌 선물을 주는데도 안 풀어보고, 쓰지 않는다면 주는 자가 얼마나 답답할까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성령을 받으면, 성령충만을 입으면 다 된 겁니다. 예수님이 근심하실 일이 없어요. 부활 후 그분이 다시 아버지 나라로 가시면서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걱정되어서 보내주신 성령을 받아들이세요. 받은 성령을 소멸하지 마세요. ‘한 번 성령 받으면 끝’이라고 말하는 자들 말도 듣지 마세요. 성경은 분명히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고 했습니다. 소멸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살전5:17). 성령이 소멸되면 총은 가졌으나 총구가 막힌 격이 되는 겁니다. 짐승이 총을 보고 도망가는 게 아닙니다. 총알을 쏘아대야 도망가는 겁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고, 받은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소총 정도가 아니라 대포를 펑펑 쏘는 격이 되어 악한 것들이 삼십육계 도망을 칠 것입니다.

성령을 잃는 것은 야성을 잃은 호랑이 짝이 나는 겁니다. 산중을 호령할 수 있는 호랑이가 사람 손에서 재롱이나 부리고 있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귀신에게 사로잡혀 꼼짝 못하고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우스운 일이며, 하나님의 속을 답답하게 하는 일이겠습니까?

우크라이나가 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지금까지 버티고, 또 오히려 역공을 펼치는 것은 우방에서 지원된 무기가 좋고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은 인생에서 최고의 나침반이요, 지침서요, 최고의 무기와 연장입니다. 이것으로 이 땅에서 승리합시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을 답답하게 만들지 맙시다. 할렐루야!

성령 충만만이

인생의 답이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예수 이름을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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