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듣고 깨닫고 실천하라(말3:10~12)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하면’, ‘그러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조건이요, 요구사항입니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해도 조건이 맞아야 주듯, 대학에 입학서류를 갖춰야 입학 자격이 주어지듯, 하나님도 우리에게 전제조건을 주시고 그것을 이행할 때 하나님도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전제조건을 제약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좋은 길, 선한 길,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청결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신답니다. ‘더러우면 안 만나준다.’에 초점을 맞추면 불평이 나오지만, ‘아! 깨끗하게 살라는, 잘못한 것은 회개하라는 거구나.’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자, 실수한 자를 용서하면, ‘그러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신다고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주신 것은 ‘내가 너를 용서했듯이 너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해줘라. 이해하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당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십일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하면’ 보다 강한 표현으로 ‘시험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확약입니다. 이런 보장된 약속이 있음에도 십일조를 하나님께 못 드리는 것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우리 손자들이 어릴 때 제가 초콜릿을 사주고 ‘할아버지 아~’ 하면 냉큼 하나 제 입에 넣어주는 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놈은 아까워서 뒤로 숨기는 놈이 있습니다. 제가 사줬는데 말입니다. 어느 놈이 예쁠까요? 하나님도 열 개 주고 하나 ‘아~’ 하시는 겁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더 주시려고, ‘요놈이 날 사랑하나? 내가 준 걸 아나?’ 보려고 그러시는 겁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면, 이런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겁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1~12).
국가에 세금 내시죠? 내가 일해서 얻은 소득인데도 세금을 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1/10을 하나님께 드려야함은 마땅합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막12:17)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율법의 산물이니 복음 시대에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만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23:23). 이는 “십일조만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십일조와 함께 네 삶에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십일조를 가볍게 여기는 말씀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의 기원을 볼까요? 창세기 14장 아브라함에서부터입니다. 즉 모세 율법 이전의 사건입니다. 그 당시에 그돌라오멜이라는 폭군이 소돔 고모라 왕과 일전을 벌였는데, 소돔 고모라 왕의 참패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재산이 다 탈취당했고, 그때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그 처자와 함께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브라함이 318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해서 야음을 틈타 그돌라오멜 왕과 그 연합군을 격파하고 대승리를 거둡니다. 그래서 빼앗겼던 것을 다 찾아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주는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가 얻은 것 중에 십일조를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멜기세덱은 손을 들어 지극히 높으신 천지의 대주재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의 삶을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중에 해가 져서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유숙하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보이고 그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자들이 땅과 하늘에 왕래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그곳에서 야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에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곳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 이름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집에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사 금의환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성경은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7~8)고 말씀하십니다. 국가의 세금을 안 내도 범법자인데, 하나님 것을 떼어먹으면 당연히 도둑놈이지요.
제 목회 초창기인 1991년 어느 날,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상 중에 갑자기 소가 나타나더니 저에게 “도둑놈!”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놀란 제가 “누가?” 하고 물었더니, 소가 “네가!” 그러는 겁니다. 이상을 본 저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적이 있나 없나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올림픽공원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가 파한 후 귀빈실에서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더러는 예물을 들고 오기도 하고, 더러는 개인적인 용돈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옆에서 김종일 장로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개척교회 목사님들도 많아서 제게 용돈으로 쓰라고 준 돈을 그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주의 종들을 돕는 것도 주의 일인지라 십일조를 떼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후 저는 깨닫고, 지교회 모든 목사들이 저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한 십일조를 명령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교단은 물질적인 어려움에서 해방되었고, 큰 전대를 차고 세계를 복음화하고 있습니다.
첫 예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3:9~10).
하나님은 6천 년이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이 되도록 하신 말씀을 하시고 되하십니다. 제게도 38년 동안 계속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 그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와 첫 열매는 구원과는 별개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잘 되는 최고의 비법입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여 영·혼·육의 복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읍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열면
닫을 자가 없다
현대판 선악과는
바로 십일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