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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비유로 하시는 말씀 속 비밀을 알라(마13:18~32)

1162호 · 2022-08-14

질병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재난에 대한 두려움, 각종 사고에 대한 두려움, 장래에 대한 두려움…. 인간은 늘 두려움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합니다.

인간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불안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담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두려움이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그러면 언제부터 두려움이 생겼을까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은 후부터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실 때 아담이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9~10).

곧 두려움은 죄를 짓게 만든 마귀가 준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함으로 공포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마귀는 공포감만 조성했을 뿐인데 두려움이 엄습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부정적인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고, 때론 ‘이렇게 사느니….’ 하면서 스스로 생명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전술 전략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마귀가 계속 총을 쏘아대면서 우리를 겁주고 두렵게 하지만, 사실 마귀는 그저 공포탄만 쏘아댈 뿐입니다. 왜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실탄을 다 빼앗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예수 이름 앞에 마귀와 귀신들이 다 줄행랑치며 도망가지 않습니까?

정작 실탄은 예수 이름을 가진 우리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습니다. 놀라고 겁을 먹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빈총을 든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우리가 대적하기만 하면 그것들은 도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여러분,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 믿음을 갖는 겁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힐 정도가 되자 제자들이 난리를 쳤습니다. “예수님, 지금 죽게 생겼습니다.”라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왜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나요? 그들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자기네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입니다. 잠에서 깨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막4:40).

하나님은 우리에게 365일 담대하라 하십니다. ‘매일 매일 담대하라’, ‘극히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 뒤에는 꼭 따라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자식을 깜깜한 골목길로 내몰면서 ‘담대해야지, 왜 못 나가?’하고 윽박지르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도 직전에 있는 자식에게 ‘겁쟁이 같은 놈 같으니….’ 이렇게 말만 하는 부모도 없습니다. 부모라면 “아빠가 같이 갈 거야, 걱정 마. 내가 해결해줄게.”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두려워 마라. 내가 함께 갈게. 내가 해결해줄게.” 하십니다. 모세가 떠난 뒤 바통을 이어받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자상하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그 하나님은 깜깜한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고 하시고,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1~3)고도 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울 것이 없지요.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우시면서, ‘나는 못 한다. 다른 사람을 세워달라.’며 두려움에 떠는 모세에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지팡이가 변하여 뱀이 되고, 뱀이 변하여 지팡이가 되게 하는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 그 약한 겁쟁이가 어떻게 300명의 군사로 그 많은 미디안 군대를 이겼습니까? 기드온은 두 번이나 양털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두려움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니엘이 과감히 사자굴에 들어간 것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담대하게 들어간 것도 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사 사자 입을 미리 막으셨고, 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하심을 믿었기에 골리앗을 향해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삼상17:45).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것도,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의 훼방과 협박에 담대했던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느4:14). 이런 고백을 해보세요.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13:6).

제가 세계에 나가 선교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핍박과 모함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51:7~8)는 말씀을 부여잡았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기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래야 들 수가 없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생각, 창의적인 생각이 불일 듯 일어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며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은 곧 성공의 열쇠가 됩니다.

12명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10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2~33)며 두려워 떨었습니다. 잔뜩 겁먹은 겁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말만 나올 수밖에요.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들 눈에도 분명 가나안 사람들이 장대해 보였습니다만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실히 믿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에덴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멋지고 아름다운 생각만 있을 뿐입니다. 그 생각이 멋진 인생을, 그 생각이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할렐루야!

두려움은

삶의 암적 존재다

멋진 생각이

멋진 인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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