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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유부단한 자가 되지 말고 열심을 내라(계3:14~22)

1152호 · 2022-06-05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4~15).

이는 하나님께서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나는 미지근한 것을 싫어한단다. 제발 매사에 분명한 자가 되라.”

저도 우유부단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우유부단(優柔不斷)이란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아닌 것이, 저것도 아닌 불분명하고, 어중간한, 미지근한 사람을 일컫지요. 무골호인(無骨好人) 하면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저는 좋은 사람보다 분명한 사람이 좋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멸치도 낙지하고는 혼인을 안 한답니다. 뼈가 없다고요, 줏대가 없다는 거지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사실 이 말씀을 받잡는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력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사랑하는 가족을 칼로 무 자르듯 잘라내는 결단력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그랬했습니다. 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도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의 심정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주만 따르기로 결단했습니다. 사람인지라 가슴은 아팠지만, 과감히 결단했었습니다. 그 결단이 있었기에 우리 어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고, 이시대 목사를 비롯한 많은 주의 종이 우리 집안에서 배출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우유부단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만일 아브라함이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는 하나님의 명령에 우유부단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반면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나안에 들어가겠다고 결단하고 애굽에 대한 미련과 속성을 버렸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공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먼저는 선택입니다.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집중이 수반되어야 하지요.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다.’ 하면 게임 하는 것, 놀러 다니는 것 다 잘라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잠도 줄이겠다 결단해야지요. 나쁜 습성도 잘라내야지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47)라고 하신 것은 비단 신앙적인 문제에 국한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매사에 결단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유부단은 성공의 큰 걸림돌이니까요.

인생은 숱한 결단, 결정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유부단하고,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다니엘서 1장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단1:8)라고 나옵니다. 결정했다는 겁니다. 뭘요? 왕이 주는 진미와 술을 안 먹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들이 이미 바벨론신에게 바쳐진 제사음식이기에 그것들로 자기를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다니엘은 결단하고 열흘 동안 채식과 물로 자신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이건 쉬운 말은 아닙니다. 왕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는 볼모 신세였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결단했고, 열흘 후 보니 진미를 먹은 자보다 살이 올랐고 윤택해졌다고 했습니다(단1).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또 어땠습니까? 그들은 느브갓네살이 만든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 처했을 때 결단합니다. 그들의 결단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3:16~18). 그들은 풀무불에 들어가는 쪽을 택한 겁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구하시든 구하지 않으시든 우상에 절을 하느니 풀무불에 들어가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이 보고만 계셨겠습니까? 그 결과입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단3:30).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말이 성경에 나옵니다. 3년 6개월 동안 기근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끝나게 될 것을 아합에게 알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극심한 가뭄이 아합이 바알을 숭배한 결과임을 알리라고 한 것입니다. 아합과 마주한 엘리야는 어느 신이 참 신인지 밝히자고 제의하자 아합도 이에 동의하고 갈멜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곧 850대 1의 정면대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엘리야는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18:21). 겉으로는 하나님을 좇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분명한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우유부단함을 회개하고 결단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24장에도 여호수아가 자신의 최후가 이르렀음을 알고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부터 우리 조상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언급한 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호한 어조로 결단을 촉구합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4~15). ‘우유부단한 신앙을 버려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유부단한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신앙의 회색분자들, 즉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넣은 채 기회를 노리는 자들을 토해버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음식이 미지근하면 맛도 없지만, 대장균이 득실거려서 그 음식을 먹었다가는 다 식중독에 걸립니다. 그런 음식이 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신앙이 미지근한 자들, 기회주의들도 쓰레기통인 지옥에 버린다고 경고하신 겁니다.

여러분, 우유부단의 근본에는 게으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미지근한 것, 게으름 때문입니다. 매사 결정하지 못하는 것, 고뇌와 번민하기 싫은, 그것에 집중하기 싫은 게으름이 작동한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늘 쉬어버린 음식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개혁합시다. 우유부단한 습관을 버리고 분명한 사람이 됩시다. 분명한 자가 열심을 내는 법이니까요. ‘부자가 되겠다’ 결단하면 열심히 저축하고, 열심히 아끼고, ‘일등하겠다.’ 하면 열심히 공부하고, ‘천국 가서 상을 받겠다’ 결단하면 열심히 주의 일을 하게 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할렐루야!

좋은 사람보다

분명한 사람이 되라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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