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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

1138호 · 2022-02-27

날마다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자(라트비아 리가 집회 광경)

3년째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팬데믹에 우크라이나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까지, 세계는 두려움과 암울함에 짓눌려있다. 무엇보다 끝 모를 바이러스 전염병의 기세에 교회마저 힘을 잃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고 있는 현상이 가장 큰 문제다. 델타변이를 누르고 우세종으로 떠오른 오미크론변이가 무서운 전염력으로 퍼져나가고 있고, 신문 방송은 연일 확진자수가 최고를 경신했다며 더욱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그런데 두려움과 좌절에 빠져있는 세상을 치유하고 희망을 줘야할 교회마저 악한 마귀의 궤계 앞에 나약함을 보여서야 되겠는가.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한 성령의 권능으로 두려움을 몰아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요즘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마다 코로나에 전염됐다며 기도해달라는 요청으로 넘쳐납니다. 주의 종들마저 ‘검사, 검사’ 하며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한 심정입니다. 내가 38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교훈은 다 어디에 팔아먹은 겁니까? 우리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성령을 받고 권세와 능력이 임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믿는 자의 따르는 표적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하는 권세, 악한 마귀의 권세를 제어할 권능을 가진 자입니다. 왜 그깟 바이러스에 벌벌 떨며 침륜에 빠져있습니까? 내가 38년 동안 여러분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전국과 전 세계를 다니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들을 안수하여 고친 장면들을 여러분은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날마다 기도하며 성령충만을 받아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라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러나 알면 뭐합니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총에 실탄이 들어있어도 두려워서 발사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무기인들 무슨 소용입니까? 또한 날마다 총구를 쑤셔서 잘 관리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해두니 다 녹슬어 정작 총을 쏴야할 때는 작동이 안 됩니다.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충만을 받지 않으면 여러분의 영적 무기가 다 녹슬어버립니다. 그러니 날마다 적에게 당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대부분이 귀신 쫓고 병 고치며 전도하신 겁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보세요. 아니 마가복음 하나만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우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헤매는 악한 마귀와 그 추종세력들이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도 날마다 귀신을 쫓으라고 말씀하셨는데(눅13:32), 왜 앉아서 당하고 있단 말입니까? 무기를 주었으면 그 무기를 가지고 적과 싸워 이겨야지요. 우리의 적은 예수 이름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그들의 권세는 이제 유명무실한 것입니다. 따라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신분을 확실히 자각하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하면 일곱 길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적의 속성을 파악했으니 더 이상 허상뿐인 적 앞에서 두려워 떨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셨습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사53:5). 따라서 우리는 아플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더러운 귀신이 일으키는 것이니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면 됩니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겁니다(호4:6). 제발 이 지식을 버리지 마세요. 코로나 따위에 지지 말고 날마다 예수 이름으로 싸워 승리하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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