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라
20년 전 LG그룹의 이야기이다. 당시 LG 구본무 회장이 새로 준공한 연구소를 방문하자 발표자가 연구소의 실적과 목표, 미래 비전 등에 관해 브리핑을 했다.
한참을 듣던 구 회장이 말했다. “나는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못 알아듣겠어요. 뭐 그렇게 어려운 약자를 많이 씁니까? 그럼, 내가 질문 하나 할게요. ‘BMK’가 뭡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발표자가 모른다며 당황해한다. “모르겠지요? 그거요, 내 이름 약자입니다. 본무 구, BMK. 그러니까 여러분끼리 쓰는 어려운 용어나 약자를 그런 식으로 막 쓰면 여기 있는 우리가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말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브리핑을 해야지, 고객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백 번 옳은 말이다. 나는 목사들에게 쉽게 설교하라고 한다. 헬라어, 히브리어 섞어가며 신학을 논하면 성도들이 어떻게 알아듣고, 어떻게 은혜를 받겠는가. 예수님의 설교를 봐라.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 알아듣게 말씀하셨다. 어떻게든 알아듣고 깨닫게 하려고 농사짓는 법, 날씨 등을 비유로 아주 쉽게 설명하셨다.
설교하라고 하면 자기 지식이나 자랑하는 자들이 있고, 더더욱은 자신도 이해가 안 돼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설교하는 자들이 있다. 왜 그런 설교를 할까?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는 에너지 낭비요, 시간 낭비가 아니겠나.
‘수준 높은 설교’란 어려운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듣고 은혜를 받고, 깨닫게 하는 설교를 말한다.
나는 교회신문에 글을 쓰는 자들에게도 쉽게 쓰라고 한다. 누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해준다. 읽어도 이해 못 하는 글을 뭣 하러 읽겠는가.
참 지식인은 내가 가진 지식을 상대의 수준에 맞춰주는 지혜까지 갖춘 자다. 사실 그것이 더 어렵다.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어차피 상대도 못 알아들으니 막 말해도 되나, 쉽게 설명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삼키기 어려운 것들을 작고 부드럽게 씹어 먹이는 것과 같으니 더욱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고, 쉽게 써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