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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호 목차 › 붕우칼럼

핵가족

1133호 · 2022-01-23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늘 북적북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는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예절을 배우고,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웠다.

요즘의 가족 형태를 일컬어 ‘핵가족’이라고 한다.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소(少)가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나는 요즘 핵가족은 많은 단점과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을 부쩍 느낀다. 상담을 하다 보면 ‘죽고 싶다’는 어린 것들, 혹은 젊은 아이들을 자주 만난다. 실제로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것이 핵가족의 폐단이다. 핵가족 형태는 가족부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맞벌이하는 부모와 외동이 허다하니 집은 그야말로 숙소에 불과하다. 몇 군데 학원을 전전하다 들어온 아이는 혼자 현관 도어락을 열고 깜깜한 집에 불을 켠다. 반겨주는 이도 없고 맞아주는 이도 없다. 더욱이 답답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외로움에 몸살을 앓고, 그래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돌고 방황한다. 예전에는 부모가 부재중이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구 내 새끼’ 하며 아이들을 품었다. 외줄보다 삼겹줄이 더 안전한 법 아닌가. 부모라는 테두리 하나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테두리가 하나 더해지면 아이들이 더 안전해지고, 기댈 곳이 생긴다. 그래서 그렇게 쉽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핵가족은 개인주의를 유발하는 문제가 있다. 북적북적하며 모난 모서리가 둥글어지고, 그 안에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또 살아남는 법도 배워야 하건만, 요즘 아이들은 더불어 살줄도 모르고, 배려나 협력할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고, 또 너무 쉽게 상처를 받는다. 그것이 사회에는 악이요, 자신에게는 죄를 짓는 자로 전락하게 만든다.

좋은 집은 돈만 있으면 짓는다. 그러나 좋은 가정은 돈으로 만들 수 없다. 몸이 편하자고 핵가족을 택할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풍요와 안정을 위해 대가족 제도로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것이 우리 가정을 살리고,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방안이요, 사회적 안정을 꾀하는 일이라 생각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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