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지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을수록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물속에 전염병균이 많으면 오염된 물이 될 것이요, 죄가 많으면 죄인들이 판을 칠 것이요, 악령이 많으면 악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약점은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수가 되면 소수를 지배하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불법도 숫자만 많으면 통과되어 그 효력을 발생한다. 그래서 다수당을 만들려 하고 무슨 일에도 많은 인원을 동원하려 하고 수의 관심은 진리의 관심을 능가하고 있다. 또한 돈이 많으면 재벌 대우를 받으니 잘 살려고는 해도 바르게 살려고 하지 않아 빈익빈 부익부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참 진리와 행복은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적을수록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에게 배와 그물을 버리고, 복잡한 내일에 대한 근심과 염려를 버리고 주를 좇으라고 하셨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공의를 위해 사는 사람, 생명까지 버리고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님같이 자기 생명을 주어 백성을 살리는 지도자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사고는 경쟁과 싸움과 이기주의를 낳아 멸망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적을수록 좋다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의 의식을 가진 의인이 이 땅에 편만할 때 의인의 나라, 의인의 교회, 의인의 가정들이 되어 서로의 것을 취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내어주는 새 세상이 올 것이다.
세상일의 고난과 형통 그 자체는 중성적이다. 즉 그 자체로 영혼의 유익이 되는 축복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믿음으로 소화하는가이다. 흥하여서 좋게 된 자는 더 담대히 하나님을 섬기는 데 매진할 일이며, 망하여서 괴롭게 된 자는 더 애통하게 하나님의 신령한 위로만을 간구할 일이다. 그러할 때 세상의 모든 썩어질 사건들이 하늘나라의 신령한 축복으로 연결되고 변화되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께 불려갈 때 자기 수중에 세상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아야 될 일이다. 주님 앞에 이미 다 옮겨져 있는 자가 진정으로 세상에서의 주님 일에 만사형통한 자인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야 한다. 알 수 없는 내일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고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영혼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6:17~19).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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