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강아지
길 잃은 강아지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강아지의 목줄이 없었다. 강아지 털에서 윤기가 나고 관리가 잘 된 것처럼 보여서 절대로 주인이 없는 강아지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 강아지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디에선가 한 분이 다급하게 뛰어와서 강아지를 안았다. 주인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셨다. 그분은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다. 집 안에 있던 강아지가 열린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고, 주인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강아지를 찾았던 것이다. 얼마나 급했는지 마스크도 안 쓰고 찾으러 나온 것이다.
강아지는 집이 싫어서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그저 열린 현관문으로 보이는 세상이 신기해서, 내내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까 밖에 나가고 싶어서 신나서 뛰어나온 것이다. 그러다 하마터면 길을 잃고 유기견 신세가 될 뻔했다. 유기견이 되면 어찌 될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단지 세상에 관심을 두다가, 세상이 재미있어 보여서 하나님에게서 뛰쳐나간다. 뒷일이 어찌 될지 모르고.
그러나 집을 나온 강아지처럼 곧 갈 곳이 없는 미아 신세가 된다. 미아가 된 자의 처지가 어찌 될까. 그 결국이 어찌 될까.
그러나 하나님은 강아지를 잃은 주인의 심정으로 우리를 부르고 찾고 계신다. 어서 돌아오라고 늘 기다리며 애타게 찾고 계신다.
세상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 그러나 그것에 현혹되면 아담처럼 에덴을 잃고 만다. 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있어라. 그 안에 안식이 있다.
김성일
십자가 사랑, 보혈의 능력
어느 수요일,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 한창 문제에 치여 심령이 답답하고 피폐할 때였다. 그날 밤 기도를 받은 이후로 ‘이 딸이 한나처럼 애통하며 기도할 때…’라고 기도해주신 대목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개월 후 주님은 나로 밤마다 금식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주 앞에 애통하는 마음 그대로를 남김없이 내어놓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내 아픔을 내어놓으며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갈수록, 나의 잘못과 죄 또한 주님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했음을 깨닫고는 회개하며 울고 또 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주가 넘고 3주가 지났을까! 하나님은 환경과 나 자신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물러가고 어둠의 영이 박멸되는 꿈을 꾸게 하셨다.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것들이 사라지며 생수가 터지니 마음이 천국이 되었음은 물론, 육체와 심령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던 아픔 또한 깨끗이 치유되었다. 우리의 반석 되시고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죄악과 아픔을 깨끗이 씻어 정결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경험한 순간이었다.
고통을 겪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못해서 향락으로 그것을 잠시 잊으려하거나 아무 능도, 힘도 없는 우상 또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마음의 위로를 얻고자 한다. 우리의 주가 되시고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모르기에 도울 힘이 없는 피조물을 찾아다니며 위안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실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은 그 안타까운 마음과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때에 이미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롬5:8).
사방이 막힌 듯하여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이 깊은 수렁과 곤고함에 빠져있을 그때는 삶의 끈을 놓거나 포기할 때가 아니요, 바로 십자가의 그 사랑과 예수 보혈의 능력을 경험할 때이다. 이 땅이라는 치열한 영적 전쟁터에서 힘써 주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끝까지 싸워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승전보를 울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11).
이국진 사모
복 있는 사람=행복한 사람
2020년 국내총생산(GDP) 1조 5,868억 달러,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글로벌 수출 6위, 수입 9위의 무역 강국.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을 수식하는 지표다. 불과 70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성장의 기반을 다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 차례나 이겨내며 위기에 강한 DNA를 심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주요 선진국보다 빠르고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며 세계의 모범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을 받아 사실상 G8 국가가 되었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그러면 행복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자살률 1등, 출산율 꼴찌다. 즉 눈에 보이는 현상적 기쁨은 가짜다.
복 있는 사람이란 행복한 사람이다. 얼마나 돈이 많으냐, 즉 상태가 아니라 관계를 말한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 지셨고, 예수님도 마태복음 5장에 팔복을 말씀하실 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셨지, ‘부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아니하셨다. 상태가 아니라 관계를 말씀하시고 있다. 또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
(잠17:1)고 말씀하신다. 역시 관계를 말씀하신다. 아무리 돈이 많고 고급저택에 살아도 다투며 산다면 불행한 사람이란 것이다. 이뿐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셨고, 반대로 ‘복 없는 사람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셨다.
나는 주례를 설 때 행복을 위해 결혼하지 말고 성결을 위해 하라고 권면한다. 누구나 이 남자(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 꿈을 꾸지만, 그중 약 50%는 이혼을 한다. 그러나 성결을 위해 서로 돕는 부부는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잘 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지만, 그 관계가 깨지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우리 모두 복 있는 사람이 되자. 복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요, 복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임택함 목사
꿈을 무시하지 마세요
저희 어머니는 “너는 어릴 때부터 꿈쟁이었어.”라는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꿈을 꾸었으니까요. 그 많은 꿈 중에 초등학교 6학년 주일 아침에 꾼 꿈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히 그려집니다.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벼가 드넓은 논밭에 펼쳐집니다. 많은 사람이 분주하게 수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서 흰 세마포를 입은, 키가 훤칠한 분이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수님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고, 그 즉시 꿈에서 깼습니다. 그때의 생생함과 놀라움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꿈에서 뵌 뒤로부터 모태신앙이었던 저는 자신 있게 “예수님은 진짜 살아계셔!”라며 친구들을 전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꿈속에 저는 예전 대구예루살렘교회(현 대구예수중심교회) 성전 앞 주차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 되시는 김보석 목사님께서 3층 성전의 한 창문을 통해 큰 소리로 “진실아, 하나님께서 너를 쓰시기 원하신단다!”라고 외치셨습니다. 특별한 목표가 없었던 저에게 그 꿈은 삶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되었습니다. 평생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하였고,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저는 사모라는 축복된 직분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대의 끝자락이었던 2001년 6월 25일, 제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가 소천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회복되시기만을 바라는 수많은 눈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버지를 천국으로 부르셨습니다. 소천하시던 그날 밤, 하나님은 저에게 아버지께서 천국에 있는 예배당에서 성도들을 향해 설교하시는 모습을 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아, 하나님은 아빠가 천국에서 해야 할 사명이 있어서 일찍 부르셨구나!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구나!’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 실의에 빠질 수 있었던 저를 하나님은 친히 꿈으로 위로해주셨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두지 않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저에게 하나님은 꿈을 통해 진리를 믿게 하셨고, 갈 길을 보여주셨으며, 슬픔을 위로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욥기서 33장 14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저의 꾀와 교만을 막으시고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시시때때로 꿈으로 계시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꿈을 꾸고도 순종하고 싶지 않아 외면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행동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왜 총회장 목사님께서 ‘꿈의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는 말씀을 하셨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환난과 고난, 재앙을 만나지 않게 하시려고 꿈으로 계시하심이라는 것을요. 총회장 목사님은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건 주님의 음성과 환상과 꿈의 계시대로 갔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 앞에서 그분의 즉각적인 순종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를 복음화하시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였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꿈으로 계시하실지라도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에게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33:14~18).
김진실 사모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땅을 조금 흔드시니 온 땅에 지진이 일고, 하나님이 물줄기를 바꾸시니 온 땅에 가뭄이요. 하나님이 물꼬를 심히 여시니 온 땅이 홍수로 울고, 하나님이 작물에 무심하시니 온 땅이 기근이라.
하나님이 편을 가르시니 전쟁이 나고, 하나님이 거두지 않으시니 유리(遊離)하는 자들이 되나니 하나님의 심판은 냉정하며, 하나님의 진노는 무섭고, 하나님의 형벌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림이 죄요, 하나님을 거역함이 죄요, 하나님을 멸시함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나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멸시하십니다. 하나님이 공의(公義)요, 정도(正道)이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 편에 서고, 늘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는 축복과 사랑을 받고, 안전합니다.
예수중심편집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