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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호 목차 › 붕우칼럼

백지에 쓰세요

1122호 · 2021-11-07

우리 성도인 어느 의사가 제약회사를 차렸다. 그래서 직원들을 채용했는데,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학위라도 있는 자는 도무지 순순히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강해서 일을 관철하기가 어렵단다. 그런데 학부출신들이나 고졸 출신은 자기 말을 순순히 수용하며 자기가 추진코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더라고 했다. 그는 내게 하소연 끝에 ‘백지에 쓰는 게 나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건축업자들은 집을 짓는 것보다 리모델링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뜯어내고 고치는 것보다 아예 부숴버리고 새로 짓는 편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이 하는 얘기도 그렇다. 아예 예수의 ‘예’ 자도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쉽지, 교회 좀 다녀본 자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일은 그들의 어설픈 이론 때문에 훨씬 어렵다고.

그렇다. 백지에 쓰는 게 쉽다. 지우는 수고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연필로 쓴 종이는 지우개로, 볼펜으로 쓴 종이는 화이트로 지울 수 있지만, 사람 머릿속에 있는 것을 지우고 다시 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통에 잉크 한 병을 섞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물을 희석하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물이 더 드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그래서 예수님이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들어간다고 하셨나 보다. 성경이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10:4~5)라고 말씀하심도 그래서 일 게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겨 버린 것은 자신을 백지상태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래야 ‘예’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어느 목사가 타교회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비전도 뜻도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총회장 목사님의 비전이 내 비전이고, 총회장 목사님의 뜻이 내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백지상태로 만들었기에 나와 예수님께 절대 순종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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