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아직도 남아있다
예수님 우편 십자가에 매달려있던 강도는 죽음을 코앞에 둔 마지막 상황에서 단 한 마디의 고백으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42~43).
인생을 제멋대로 허비하며 죄 가운데 살아오다 그 죗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곧 죽을 처지에 놓인 강도에게 과연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에 달린 채 이제 죽어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밖에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고 체념한 비참하고 절망적인 그 순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끗이 시인하고 예수님을 향해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구한 한 마디의 고백, ‘나를 생각하소서.’ 이 한 마디는 그의 전 인생과 바꿔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아니 비교할 수조차 없을 영생을 기약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처하여 살 소망조차 없을 그 순간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곧 숨이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에도 단 한 마디의 고백으로 이 땅의 삶과는 전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영생복락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조건에 처해있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만 소유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당신의 전 인생을 팔아 예수님만 살 수 있다면 그 이상 최고의 투자는 없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13:44).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까? 다 끝났습니까? 아무도 당신을 기억해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이 땅에 살아갈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다고 좌절 낙담하고 있습니까? 취업도 되지 않고, 결혼도 할 수 없고, 전셋집조차 구할 수 없습니까? 이 땅이 지옥과 뭐가 다르냐고 항변하고 있습니까? 아니 아무런 의욕도 없고, 손가락 하나조차 까딱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냥 이러다 콱 죽어버리고 싶습니까? 그래서 더 이상 나에겐 아무런 시간도, 기회도 남아있지 않다고 주저앉아 있습니까? 천만에요. 살아있는 것이 기회입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때는 오직 내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뿐입니다. 내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기회도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입니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라도 살아있어야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천국의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오직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입니다. 죽음은 내 자유의지의 끝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습니까? 아직도 여전히 기회는 있습니다. 꼭 기억하세요. 이 땅의 삶이 당신의 영생을 좌우한다는 것을.
Henry Han
henry882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