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말라, 완전범죄는 없다
“자고로 인간의 심리란 자신의 약점이나 과거의 잘못을 알고 있는 사람이 죽길 바라는 법이다.”
목사님이 지난 수요예배에서 완전범죄를 꾀하던 다윗의 사건을 설명하며 인간내면의 심리를 진단하신 말씀이다.
“인간 세계의 수많은 범죄들, 특히 살인사건들이 이런 범죄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내 마음과 합한 자라, 그를 통하여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신 하나님의 용사 다윗, 그러나 그가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완전범죄를 이루기 위해 우리아를 죽인 사건은 그런 측면에서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요압 장군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를 전선에 내보내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다윗왕은 어느 날밤 초저녁잠에서 깨어난 후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멀리서 아리따운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동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봅니다.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겁니다. 비록 마음이 동하였다 할지라도 그녀가 자신의 충복 우리아의 아내라는 사실을 안 후에는 마음을 접었어야 다윗다운 처신이었을 것이나 이미 욕심이 잉태한 다윗은 멈추질 못하고 그녀를 취하고 맙니다. 그런데 얼마 후 밧세바로부터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자신의 불륜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다윗은 전선에 나가있던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입니다. 부부가 함께하고 나면 자신의 죄가 덮일 것이라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충신 우리아는 집에 가질 않습니다. 술까지 먹여가며 회유를 해도 그는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며 일신의 안위를 스스로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돌이킬 생각은 않고 죄가 장성해지더니 결국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합니다. 자신의 불륜을 덮기 위해 그토록 충성스런 신복을 죽게 하다니 이보다 더 극악할 수 있습니까? 우리아가 죽었으니 이제 완전범죄를 완성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겠지요? 하나님 앞에 그토록 순전했던 다윗조차도 욕심이 잉태하고 죄가 장성하니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던 자가 이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잘 된다면 하나님이 안 계신 거지요.
믿음이 뭔지 압니까? 믿음은 아주 단순합니다. 믿음이란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집요한 유혹이 왔지만,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하며 단호히 뿌리치고 옥에 갇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요셉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눅12:2~3). 해 아래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 질책하셨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진 자라도 그가 하나님을 피하여 그릇된 길을 갈 때는 나단 선지자처럼 단호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 참 하나님의 종이라 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단의 모든 종들이 나단 선지자 같기를 바랍니다. 다윗왕은 나단 선지자의 준엄한 지적에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즉시 용서하셨지만, 그 죄의 대가는 평생 뼈저리게 치러야 했습니다. 자녀들 간에 서로 죽이고 죽이며, 아들의 반역에 쫓기는 등, 이후로 다윗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죄는 용서 받되 그 죄의 대가는 무섭게 치러야함을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사 자업자득(自業自得)입니다. 무엇이든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만고의 진리입니다.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뵙는다(마5:8) 하지 않았습니까? 큰 자가 되기 전에 먼저 깨끗한 자가 됩시다. 할렐루야!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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