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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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행복의 비밀

1117호 · 2021-10-03
세상을 보는 창

행복의 비밀

영국 런던에 있는 캔터베리 교회에 ‘니콜라이’는 17세에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가 되어 평생을 교회 청소와 봉사 및 관리를 했다. 그는 교회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맡은 일에 헌신하며 충성했다. 그가 하는 일 중에 하나는 시간에 맞춰 교회 종탑에 있는 종을 치는 일이다. 니콜라이가 교회 종을 얼마나 정확하게 쳤든지 런던 시민들은 자기 시계를 니콜라이 집사의 종소리에 맞추었다고 할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종을 쳤다. 캠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수가 된 두 아들이 아버지 니콜라이에게 이제 일을 그만두라고 하자 니콜라이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

그가 76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족들이 임종을 보려고 모였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 종을 치다 종탑 아래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은 감동을 받고 영국 황실의 묘지를 그에게 내주었으며, 그의 가족들을 귀족으로 대우해주었다. 모든 상가와 시민들은 그날 하루 일을 하지 않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심지어 유흥주점도 문을 열지 않자 자연히 그가 세상 떠난 날이 런던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하찮은 일인지 고귀한 일인지는 남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충성하고 헌신하면 그것이 바로 가장 고귀한 일이요,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과 나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몇 주 전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 모세는 120세까지 살았지만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신34:7)고 말씀하시면서, ‘난 은퇴란 없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까지 일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 목사님은 사명에 부도내지 않는 분이요. 직분에 충성된 분, 예수님의 행복한 노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 직분에 작은 일부터 시작하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정금 전도사

낮은 울타리

주님께 시선 고정하기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사실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거창한 기도 제목이나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작은 깨달음으로 새벽기도를 하게 되었고 그 작은 깨달음을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우연찮게 전도사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전도사님의 말씀에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하나씩 털어놓게 되었습니다. 상담이 끝난 후 마음이 굉장히 가벼웠습니다. 전도사님께 털어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도사님께 말씀드린 내용들을 되짚으니 문득 나의 고민들이 참 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도사님께 말씀드렸던 저의 고민은 돈과 세상에서의 명예에 관련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발견하자마자 아차 싶어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해야겠다.’라고 육성으로 다짐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며 저는 ‘기도로 하루를 열어라’고 예배시간에 간절히 외치신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는 조급하던 제 마음에 주님이 인도하신다는 확신과 평안이 가득하게 했습니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주님의 손길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한 시간의 기도가 하루를 바꾸게 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학부원 중 이 새벽기도에 동참하는 인원들이 있었는데, 이들 또한 더욱 거룩하게 살기 위해, 불평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새벽기도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이유가 돈도, 명예도, 사업 성공도, 좋은 학점도 아닌 바로 주님과 더욱 닮아가고 주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새벽기도를 왜 시작하게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성령충만을 잃으면 야성 잃은 호랑이, 독수리가 된다.’는 목사님 말씀처럼 치열하게 살면서도 야성과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주님께로 다시 시선을 고정시켜주신 것입니다.

감사가 부족하고 내 상황이 어려워질 때 새벽에 주님을 만나세요 . 나의 시선을 주님께 향하게 기도하세요. 그때 주님의 역사가 내 마음에, 내 환경에, 내 상황에 임할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삶을 바꿉니다.

장수정

에덴으로 귀환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세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직원들을 해고하고 싶을 때도 있고, 업체와 거래를 끊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슬럼프에 빠지거나 뜻하지 않던 위기가 닥치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매너리즘에 빠질 땐 지금 주어진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모른 채 내려놓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총회장 목사님께서 주신 액자의 글귀를 보며 흥분한 마음을 다독이고 생각을 바꾸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자주 하십니다. 10년 전 회사를 창립할 때, 총회장 목사님께 그 말씀을 받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라는 말씀을 상고하며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우리 회사를 이끌어오게 된 지표가 되었습니다.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창립 멤버였던 한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현재 차비와 식대밖에 없어. 정말 열심히 일궈내서 꼭 열매를 함께 나누자.”고 창업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모아두었던 돈과 실업급여를 받는 것으로 일단 어떻게 해보겠다며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이 일을 꼭 함께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참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땐 우리에게 넉넉한 자금도 없었고,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건강한 신체와 타오르는 열정뿐,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영업을 하려고 무작정 찾아간 한 업체에서는 젊은 여자 둘이서 어쩜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오느냐며 그 기백에 감동했다고 거래를 터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똘똘 뭉쳐 하나둘씩 일을 헤쳐 나갔습니다.

회사가 조금씩 성장했고, 3년이 지날 즈음 그는 어떤 개인적인 사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감당해내기 힘들 정도로 서로 할퀴고 상처가 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친구와의 관계를 확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 사무실에 앉아 펑펑 울고 있었는데, 눈앞에 한 글귀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라.”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습니다.

사업의 울타리를 치기 시작할 때 그 친구에게 느꼈던 고마운 마음, 성공해서 꼭 그 노고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흐르는 물 한 컵에 대한 은혜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며 아름답게 마무리했고, 그 이후에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결혼, 생일, 명절 때마다 처음 울타리 칠 때의 마음으로 크고 작은 선물을 하나씩 보내 마음의 은혜를 갚았고, 여전히 그렇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이직할 때마다 우리 회사에 꼭 개발 의뢰와 발주를 넣습니다. 지금은 꽤 규모가 큰 기업에 근무하여 상상 이상의 제품 발주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예전에 함께 창업을 하며 힘들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뿌듯해했던 그 시절 추억담을 나누며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다 포기하고 싶나요? 크게 한숨을 고르고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해보세요. 모든 문제들의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김온유 집사

GOOD NEWS

대만의 한 시사 잡지에서 ‘미래의 노후’라는 주제로 웹 영화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빠르게 증가하는 노령인구로 인해 달라질 미래의 모습들을 다룬 웹 영화들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래의 노후-친구’편은 많은 독신 네티즌들의 공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영화는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노인의 자식 네 명은 모두 장성해 교수가 되었거나 해외에 나가 살고 있어 자식들이 모두 떠난 산골 집에는 노인 혼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멀리서 찾아온다는 소식에 그는 정성껏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지만 곧이어 오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준비했던 음식들은 주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친구를 불러 함께 식사할 계획을 세우지만 누렇게 색이 바랜 낡은 수첩을 한참 동안 뒤적거려도 식사할 만한 친구를 찾지 못하고 결국 노인은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쓸쓸히 홀로 먹는 마지막 장면 위로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할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자막이 흐릅니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도 고독함을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거나 죽음을 앞두고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영생복락의 천국까지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변치 않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세요!

생활속의 잠언

내 인생의 주관자는 오직 주님

경주에서 운영하는 두 곳의 스터디카페는 주님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지역의 학생들과 취준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행복은 범사에 삶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따라 살아가면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내 인생의 주관자라는 고백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많은 인생의 시련 끝에 얻은 주님의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아울러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도 결코 쉬운 삶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가족들은 병들어 있고, 삶은 피폐해져 있으며, 몸은 병들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의 뜻은 뒷전에 있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삶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피폐한 삶의 연장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던 어느 날, ‘주님 저는 왜 이리 끝이 나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에서 방황해야 할까요?’라며 애통하다가 깨달았습니다. 내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거의 6개월 이상 ‘주님, 내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작정하며 기도했습니다.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긴 시간을 내 주관대로, 내 뜻이 주님의 뜻인 줄 알고 살아온 나를 버리기에는 힘겨운 눈물의 시간이 필요했고, 고통의 시간도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이렇게 고백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주님, 제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어쩌면 누구나 주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끝나지 않을 ‘나’를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훈련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 따라서 살아가는 삶의 유익을 맛본 이후에도 가끔 고개를 쳐들며 내 뜻대로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곤 하니 이 훈련은 계속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은 삶은 온전한 축복의 삶이요, 행복의 초석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 내 인생의 주관자는 오직 당신뿐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하루의 삶을 시작하려 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오자유 집사

울림 있는 삶

구조조정

처음 식당을 오픈할 때 주방 3명, 홀 3명, 총 6명의 직원이 있는 가게를 인수했다. 테이블 4개의 회전은 빨랐고, 배달 중심이라 큰 매출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월말정산을 해보니 높은 인건비와 폭등한 임대료로 인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였다. 10년 사이 4명의 주인이 바뀐 이유를 알 것 같다.

고민 끝에 영업시간을 늘리고, 퇴근 후 딸과 나는 전단지를 돌리며 전면쇄신을 꾀했다. 그러나 오히려 직원들의 임금인상요구와 불만이 이어졌고, 결국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끌려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불경기에 인건비의 절반이라도 건진 걸 감사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들의 도움을 최소화하며 일에 매진했다. 오후에 서빙을 돕던 당시 고3이던 딸이 “엄마, 혼자 다 하지 말고 도움을 받으세요.”라고 했지만, “아니야.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야 요령과 순발력이 생기지.” 했다.

몇 개월 후, 나는 자신감을 얻은 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대기업도 아닌데 무슨 구조조정이냐며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딸에게 홀을 맡겼고, 아직은 생소했던 대행업체를 선점하여 훨씬 낮은 임금으로 대체했으며, 가족 위주로 운영하며 변화와 개혁에 성공했다. 흥망을 지켜보던 전 업주에게 구조조정이 필수임을 강조하자, ‘사장이 돼서 체면이 있지.’ 했다. 그러라지!

빛바랜 앞치마를 두른 채 배달하는 엄마의 모습에 머뭇거렸던 딸도 부끄럼을 개의치 않고 열정적이다. 바쁜 와중에도 가게 안은 항상 목사님 설교가 울려 퍼진다. 직원이라면 꿈도 못 꿀 사장만의 특권이라고 감사를 딸에게 주입시키며 지혜를 얻고 영적인 충만도 채운다. 때에 맞는 구조조정으로 나는 호황 중이다.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개혁하지 않으면 개혁의 대상이 되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내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거라고.

어려운 시기인 지금이 구조조정 할 때다.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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