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에 충실해라
본업에 충실해라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는 대통령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때 그는 장관직을 수행하는 일 때문에 주일 성수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일을 못하게 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그는 주일 성수를 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장관직을 수락했고, 임기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토요일이면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비행기로 움직이며 주일 성수와 교사직을 감당했다.
한번은 기자들이 질문했다.
“장관직이 주일학교 교사직보다 못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장관직은 몇 년 하다가 그만하게 될 부업이지만 주일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해야 할 나의 본업입니다.”
신앙인은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고히 해야 한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능력과 건강, 재물, 권세 등을 주신 것은 하늘의 것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 삶의 이유와 목적은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고전10:31).
솔로몬 왕은 땅의 모든 부귀, 영화, 권세를 누렸으나 그 말년에 깨달은 것이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라고 기록한다(전12:13). 예수님도 믿음의 사람에게는 삶의 우선순위가 있으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할 때 모든 것 위에 더하시는 복을 주신다고 하신다(마6:33).
모두가 어렵다, 힘들다 하는 코로나 시대, 바로 지금이 진정 하나님이 주신 본업에 충실할 때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힘 있게 감당하라.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을 증거하라.
김상욱 목사
기도의 용사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머물던 어느 여름날, 음식에 이상이 있었는지 고열에 설사만 계속하다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 엄마는 곧장 나를 들쳐 업고 보건소를 찾으셨지만 주사를 놓자마자 난 완전히 의식을 잃고 숨이 멈춰버렸다고 했다. 의료진도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던 그 순간, 엄마는 주변을 돌아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는 보건소와 마을이 떠나갈 만큼 크고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으셨고 여호와 이레, 때마침 그 앞을 지나던 다른 마을 어른이 오셔서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다 따고서야 숨이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낳고 나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날마다 기도의 열쇠에 기름칠을 해왔기에 절체절명의 위기 때 그 열쇠로 하늘 문을 곧바로 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엄마에게는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적의 열쇠임을 체험한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였고, 나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씨앗이 뿌려진 초석이 되었다.
우리 목사님은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기도를 잃은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 ‘기도는 인생의 마스터키다’라고 틈만 나면 외치신다. 이는 말세지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악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 세대를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기도로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 잘되라고 잔소리하듯, 36년 넘게 변함없이 기도의 본을 직접 보이시며 가르치시는 목사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기독교 영화 워룸(War room)에 보면 남편과 가정불화를 겪는 어느 젊은 아내가 기도의 용사인 노부인의 권면과 중보 기도에 힘입어 기도의 골방에서 영적 전투를 치러내는 용사로 거듭나고, 나아가 남편과 자녀까지 예수로 하나 되어 하나님의 강한 군대로 일어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도는 말 그대로 전투(war)다. 코로나시기를 디딤돌 삼아 기도로 내 영·혼·육의 녹과 때를 제거하고 부지런히 기름칠한다면,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하늘 문을 열고 닫으며, 세상과 음부가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십자가 군사들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나는 하나님의 보물이다
5만 원짜리 지폐가 조금 구겨졌다고 이 돈을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 구겨져도 여전히 돈은 돈이니까.
어떻게 보면 ‘정체성’이란 이 지폐와 같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 우리는 그것을 ‘정체성’이라고 한다. 이 정체성이 확실하면 어떤 환경, 상황, 조건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의 참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확인해야 될까? 나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에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이시고 그 피 값으로 나를 사셔서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 그런즉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나를 자랑하곤 한다. 세상이 나를 보는 기준은 그 사람의 보고 싶은 대로 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계 70억 인구 중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나를 찾으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그 피 값으로 나를 사셨다. 장차 천국을 상속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보물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체성의 기준은 ‘내가 나를 보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기준’임을 말씀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에 대해 ‘벌레’(시22:6)라고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고 말씀하셨으며, 바울은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행9;15)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보고, 듣고, 말한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자존심 때문이다. 자존심은 다른 말로 열등감이다. 자존심으로 승부해서는 인생의 성공과 행복은 전무하다. 반면 자존감은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나는 조금 변화된 것 아니라 완전히 새것으로 변화된 하나님의 보물이다. 높은 자존감, 나의 정체성이 확실할 때 늘 평안하고 행복하다. 나는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새로운 본성에 상황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우리 모두 자신 있게 도약하고 도전하자.
임택함 목사
엄마라는 이름
엄마로 살게 된 지 10년.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단어가 이렇게 책임감이 크고 무거운 말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나의 우주,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보배롭고 소중한 귀한 존재. 그런 존재들을 양육하는 귀한 이름인데 나는 지금 엄마로서 잘 하고 있는 걸까!
엄마라는 이름은 그냥 거저 얻는 이름이 아니다. 임신해서 출산하면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지만 진짜는 그때부터이다. 아이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기까지 엄마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했음에도 엄마 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한다. 엄마로서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끼며 산다. 그래서 더욱 공부하고 알아보고 노력하고 기도한다. 그렇게 해도 후회와 반성, 자책과 괴로움 속에 있을 때도 많다. 그런 내 삶이지만 그러면서도 발전되어가는 모습이 있을 거라는 한 편의 기대감(?)도 있다.  
육아의 최대 목표는 독립이다. 독립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돈 버는 것에 급급해서, 다른 어떠한 이유들로 인해 아이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삶을 살아내다 보면 힘든 시련과 고난들이 있지만 함께 잘 이겨내야 한다. 부모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부모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양육은 저절로 되는 줄 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부모 되기를 먼저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고 잘 안되면 그때 가서 공부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마치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전에 운전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과 요령을 공부하듯, 부모도 아이 키우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요령만 알면 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희생과 인내심을 발휘하다가 더는 버티기 힘들어지는 때가 있다. 부모가 무너지면 결국 아이에게도 불똥이 튄다. 부모가 무너지면 아이도 무너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인드컨트롤이 매우 중요하다. 아이의 마음을 잘 공감해주도록 노력하고 기도와 찬양으로 마음을 무장하면 도움이 된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니 실수도, 시행착오도 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육아에 임하는 것도 좋다.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한 아이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맡겨주셨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을 주셨다. 엄마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우리 아이들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정효경 집사
happy_holly@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