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이 더 많다!
우리 편이 더 많다!
얼마 전 만난 한 친구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뒤에서 험담하는 걸 알고 나니까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부담이 되더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었다. “우리 목사님은 천만의 기독교인들이 다 자신을 이단이라고 해도, 사천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며 힘을 내셔서 오늘에 이르렀어요. 설령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도 그 공동체 안에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주의 종과 직분자들,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지체들이 있어요. 단지 당신에게 부정적인 몇몇 사람 때문에 그것들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나요?” 지금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살다 보면 서로 간에 호불호가 갈리고, 안티(Anti-)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는 법. 통치권자가 아무리 나라를 잘 다스려도 지지율은 50%를 넘기 힘들고, 언론과 야당은 문제 제기와 날선 비판으로 제 역할을 한다. 목회자라고 예외일까? 설령 교인이고 직분자라도 마냥 교회와 주의 종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호의적이나 누군가는 “저 목사는 저게 문제다.” “우리 교회(부서)는 이래서 싫다.”라고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에 주목하느냐다. 열왕기하 6장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로 쳐들어와서 성을 에워쌌을 때 엘리사는 두려워 떠는 사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6:16) 그러자 하나님은 그 사환의 눈을 열어 불말과 불병거가 산을 둘러싼 것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천군 천사가 우리를 돕는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시는 예수님과 목사님, 또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있다. 부정적인 사람, 비협조적인 사람, 훼방하는 사람보다 우리 편이 더 많다! 지금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가서야 되겠는가.
우리의 시야와 마음을 넓히면 더 많은 영혼들을 품을 수 있다. 예수님도 그렇게 온 인류를 품으셨고, 총회장 목사님도 그렇게 전 세계를 복음화 하셨다. 우리 편이 더 많다! 고로 우리도 할 수 있다!
신혁주 전도사
나를 보내신 곳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기 전, 뜻이 있는 교사들과 함께 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물티슈 전도를 나갔다. 함께한 교사들과 기도를 마치고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설렜다.
그러나 물티슈를 받는 아이들의 반응도 천태만상. 그러던 중 한 사건이 터졌다. 어깨동무를 하고 약간 거친 언어를 내뱉으며 교문 밖을 나서는 너덧 명의 남학생들에게 물티슈를 전하면서 인사했다. “안녕 얘들아. 혹시 너희 교회 다니니? 더운데 공부하는데 수고 많지? 힘내.” 그런데 손에 물티슈를 받아든 한 학생이 물티슈를 하늘로 던지더니 발로 차 버린다. 아~~~ 이전 같으면 참지 못하고 붉으락푸르락했을 터.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시시덕거리면서 가는 아이들에게 한번 외쳐준다. “얘들아, 예수 믿으렴.”
땅에 떨어진 물티슈를 줍는데 마음이 뜨거워졌고 동시에 회개가 되었다. “주님, 목사라고 그동안 교회 안에서만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밖에 나와 한참 어린 학생들의 무시를 받으면서 전도를 해보니 그동안 교회 안에서 섬김만 받고 편하게 있었던 것을 실감합니다. 다시 제가 있어야 할 현장으로 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편안하고 안일해진 마음을 회개합니다. 비록 학교 앞에서 전도하는 것이 미련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 일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저를 새롭게 하여주시옵소서.”
새벽기도와 노방전도, 그리고 저녁부서모임이 끝나고 늦은 밤 목회자 기도 모임 때 무릎을 꿇으니 피곤 대신 마음이 뜨거워지고 부르짖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처음 만난 첫사랑이 여태껏 식어본 적이 없으며 뒤로 물러난 적도 없다고 하시는데 그 비밀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인의 삶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코로나 기간에 본인 믿음 챙기기도 급급하여 전도할 힘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전도하러 나가면 상상할 수 없는 새 힘이 다시 공급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 사명자는 힘이 있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전도함으로 새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는 곧 끝난다. 그때는 우리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곳에서 다시 한 번 총력 전도해보자.
이현승 목사
세상에는 수많은 이방종교들이 있고 나름대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막힌 길이요, 끊긴 길입니다.
우리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인데,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이처럼 참담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석가탄일이 다가오면 도심 곳곳의 가로수에 긴 줄을 묶어 연등을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한 종교행위는 자기 과시에 불과하고 자기 스스로 위안을 받는 일입니다. 연등을 달고 방생을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변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들어갈 때 미국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죽음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그분은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따라가야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모두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상화평 목사
하나님의 응답
언니가 천국 간 같은 달에 남편이 급성 저혈압으로 소천했다. 남편은 고관절 수술 후 칩거하면서 알코올에 더욱 의존했고, 누가 봐도 간경화 말기 증세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복수가 차오르자 남편은 복통을 이유로 술을 진통제 삼아 마셨고, 병원 내방 권유도 거절했다. 통증은 남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보기에 너무 안타까워 나는 매일 극심한 고통의 과정 없이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라 기도했다. 고아로 자라며 경도 지적장애까지 있어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남편은 가족들을 의지하고 사랑했었다.
며칠을 낮 장사만 하고 언니의 유품 정리 겸 남편의 짐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청소가 끝나고 정상영업을 가동한 날이었다. 낮 2시경 퇴근한 딸은 아빠가 몸을 유독 많이 떤다고 하길래, 나는 많이 아프면 같이 병원에 가자며 통화했는데 나중에 가겠다는 답만 들었다.
그러나 딸이 아빠에게 쉬고 계시라며 눕혀드리고 샤워를 하고 나온 사이 남편은 사망했다. 심폐소생술도 실패했다. 딸은 ‘그날도 전날처럼 일찍 퇴근했더라면…’, ‘샤워만 하지 않았더라면….’ 하며 자책하며 슬퍼했지만,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신실한 응답이라고, 예수님과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 얘기를 들려주며 하나님이 아빠를 사랑하셔서 그리하신 거라고 딸을 위로했다. 실제로 남편과 딸은 주기도문 암송과 천국과 지옥에 대해 열띤 강의를 하기도 했고, 남편은 주일날이면 헌금하라며 용돈도 주었다. “여보, 나 오늘 기도했어.”라며 어린애마냥 자랑하던 여리지만 예쁜 믿음의 소유자였다. 분명히 낙원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예수 믿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누가 죽는 날과 그 시를 알 수 있을까. 동생도 그랬고, 남편은 죽기 수 분 전까지도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찌 살아야 할까? 언니와 남편의 죽음을 보며 문뜩 생각이 깊다. 그저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신 예수님을 크게 불러볼 따름이다.
추성숙 집사
있어야 할 자리
어떤 사람이 파리에 있는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오래되고 낡아 빛바랜 진주 목걸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좀 비싼 듯 했지만 500달러에 사서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그것을 팔아야 할 만큼 집에 급한 일이 생겨 그것을 집 근처에 있는 보석상에 가지고 갔더니 보석상 주인은 한참 동안 감정을 한 후 이 사람을 한 번 쳐다보고는 2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놀라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는 그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유명한 골동품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 주인도 한참을 감정하더니 5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 사람은 더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색깔이 다 바랜 진주 목걸이인데 왜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갑니까?”
그러자 골동품 가게 주인은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러면서 돋보기를 진주 목걸이에 들이대면서 자세히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세핀에게, 황제 나폴레옹으로부터”
그리고 오른편에는 나폴레옹 황제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진주 목걸이 자체만으로는 불과 몇 십 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혀있는 글씨와 친필 사인 때문에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석 값보다는 거기에 적힌 글 값이 훨씬 더 비쌌던 것입니다.
아무리 진주 목걸이에 황제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고물상에 있으면 불과 500불짜리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니까 엄청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카스 삶의 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