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막16:15~20)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遺皮 人死遺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입은 나는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생각해보셨습니까?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하는 명제는 결국 ‘이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와 관련된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돈과 명예를 얻고자, 더 큰 권력을 얻고자 애쓰며 살고 있습니까? 그러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요, 권불십년(權不十年)입니다. 인생 자체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벧전1:24).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게 되어 있으니 육신을 위해 산다는 것이 진정 가치가 있을까요?
인생은 일생(一生)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삶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올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히9:27)는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행한 대로, 살아 행한 대로 하나님은 보응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저는 그 해답을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찾아볼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우리의 일생을 오직 주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현명하게 사는 법이요, 옳게 사는 법이요, 가장 득이 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한 삶을 사는 방법 중의 가장 으뜸은 ‘복음을 전하는 삶’, ‘전도하는 삶’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을 치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마땅히 할 일, 곧 사명(使命)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권능, 다시 말해 권세와 능력이 왔으니 그것으로 나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와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것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주님의 증인이 되라,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땅 끝까지 가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단연 으뜸도 영혼을 구원함에 있고(막1:38), 예수님이 12제자를 삼으신 이유도 먼저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요, 다음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막3:14). 교회의 사명 역시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노아의 때와 같이 패역한 이 시대를 참고 계시는 줄 압니까? 이방인의 숫자가 찰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롬11:25). 아직 구원받을 백성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데 나가 외치는 자가 없으니 어찌 그들이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듣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인침을 받은 우리가, 죄인인 우리를 건지사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지구를 150바퀴 이상 돌면서 한 일은 오로지 구령사업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 자녀가 갖는 특권, 곧 예수 이름의 권세를 알게 해서 세상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라고 가르치고 다닙니다. 그것에 확신을 보이기 위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듣지 않는데 어찌 알겠습니까? 늘 말씀드리지만 광고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고, 아무리 좋은 아들딸이 있어도 사람들은 모릅니다. 성경도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속적으로 거듭 말씀하시길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고 하십니다.
전도하는 자가 받을 보상은 어마어마합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너무 추상적이라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며 일생을 전도의 일에 매진했던 사도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고 했습니다. 그날에 면류관이 있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그날에 상이 없다면 지금처럼은 안 삽니다. 조금 쉬고, 조금 편하게 목회할 겁니다. 그러나 그날 받을 면류관, 그리고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30)는 약속을 온전히 믿기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내세에만 상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갚아주시되 헌신의 백배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 살면 주님이 나를 위해 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못합니까?
여러분, 사명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사명은 완수하지 못하면 대가가 따릅니다.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그 화가 뭔 줄 압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33:2~4). 전하지 않으면 피 값을 받으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포를 놓으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소경이 벼랑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동차가 후진하고 있는데 그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다면 달려가 그 아이를 건져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지옥으로 떨어져 가고 있다면 마땅히 복음을 전해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가서 전하세요. 나가든지 보내든지 하세요.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지만 자라고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곧 하늘 문이 닫힐 때가 옵니다. 그날 후회하지 말고, 일할 수 있을 때 일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십시오.
우리가 이 땅에 남기고 가야 할 것은 ‘예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날 이름이요, 우리의 구원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영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래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하는 자가 지혜롭다
차선은 없다
오직 최선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