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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의욕이 없는 것은 꿈이 없기 때문이다(고전15:1~19)

1092호 · 2021-04-11

왜! 여러분은 주일 새벽부터 나와 봉사를 합니까?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좀 쉬고, 교외로 나가서 피로도 풀면 좋을 텐데요. 왜! 여러분은 생명보다 귀하다는 물질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립니까? 그걸로 맛있는 것도 사먹고, 모아서 좋은 집도 사면 좋을 텐데요. 왜! 여러분은 못 들을 소리 들어가며 우리 교회에 나옵니까? 편하고 시설 좋고 욕 안 먹는 교회도 많은데요. 도대체 왜 그럽니까? 꿈이 있기 때문이지요? 죽으면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산다는 꿈이 있고, 행한 대로 상도 받고, 면류관도 받고, 더 나아가 열 고을의 왕이 된다는 꿈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지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압니까? 꿈과 이상이 없는 자입니다. 꿈과 이상이 없다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일반입니다. 한 세상 본능대로 살다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꿈은 곧 목표요, 목적일진대 목적지가 없는 배나 비행기가 어찌 될까요? 과녁이 없는 화살이 어찌 될까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이렇게 산다면 어찌 될까요? 그런 삶은 불을 보듯 뻔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꿈이 있는 자는 의욕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의욕은 넘지 못할 벽이 없고, 삶을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지요. 모세는 40년 동안 도망자로 광야에서 지내다보니 꿈도 이상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매사 의욕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양떼를 초원으로 몰고 나가 풀어놓고는 넋 놓고 앉아 있다가 저녁에 집으로 들어와 잠을 자는 것이 고작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생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가라는 큰 목표를 주신 겁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변했습니다. 의욕이 샘솟고, 지혜가 샘솟고, 점차 담력이 생기고, 80의 나이에도 40대 기력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꿈이 생기면 이렇게 변합니다.

요즘 서울과 부산에 시장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후보자들을 보세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뛰어다녀도 안 지칩니다. 자존심도 없습디다. 자기를 욕하는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여가며 한 표를 부탁합디다. 왜요? 시장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개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녀는 “옳소이다.”라며 딸의 병 낫기만을 소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안 좋아서, 코로나 때문에, 가진 게 없어서…, 이러면서 세상 탓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꿈을 잃어 의욕이 없기 때문에 만사가 다 어렵고, 만사가 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 어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편한 세상이 있었나, 만만한 세상이 있었나, 만족할 만큼 풍족한 세상이 있었나 물어보세요. 다들 입을 모아 없다고 할 겁니다. 세상은 늘 녹록치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영웅이 탄생하고, 새로운 신화를 쓰는 자가 나오는 것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 목적을 끝까지 사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예전에 사하라 사막을 건넌 사람은 군인들과 장사꾼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복자와 거부의 꿈이 있었기에 죽음의 모래바람 속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까? 올해 목표는 세우셨나요? 이대론 안 됩니다.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신의 생각이 부활해야 합니다.

1950~60년대 흑인인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습니다. 그의 꿈은 그가 한 연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백인 소년과 흑인 소녀가 손에 손을 붙잡고 몽고메리 시가지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는 피 묻은 조지아 주 언덕 위에서 옛적 노예의 아들들과 옛적 노예 소유주의 아들들이 형제애에 넘치는 밥상에 함께 앉아 있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의 흑인들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입니다. 흑인들이 가는 식당과 백인들이 가는 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폭력투쟁으로 꿈을 일구다 1963년, 총에 맞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었고, 마침내 노예의 아들이 백악관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 꿈은 확실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꿈을 버렸을 뿐입니다. 당신이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꿈을 접었기 때문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꿈을 심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앗을 심었다고 바로 나무가 되나요? 바로 열매를 따나요? 아닙니다. 자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알면서 왜 꿈이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합니까? 왜 즉시,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꿈의 씨앗을 파버립니까? 그래놓고 꿈은 허상이라고 말하며,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자들, 정말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안하무인인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를 보세요. 하루아침에 됩디까? 재판관이 지칠 때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확실했기에 과부의 의욕은 꺾이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재판관이 과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지 않습니까? 김구 선생과 이승만을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이 기필코 조국을 독립시키고야 말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저항했고, 해외로 뛰어다니며 대한민국이 약소민족으로서 일본에게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리는 등, 민족을 다시 일어서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바로 독립했습니까? 순탄하게 이뤄졌습니까? 아닙니다.

꿈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달려가야 꿈이 일장춘몽이 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이 병을 낫는데 무려 12년이나 걸렸습니다. 사사기 11장에 나오는 입다가 이스라엘 우두머리가 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요셉의 꿈도 꽤나 시간이 흐른 후에 이뤄졌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33년이란 세월을 이 땅에서 보내셨습니다. 누차 말하지만, 조급이 죄요,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저도 목회 초기에 ‘세계교구’라는 푯말을 써놓고는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아우르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 꿈이 에너지가 되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전국 집회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금요철야예배와 주일예배를 드리고는 다시 월요일이면 보따리를 싸들고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을 기점으로 세계로 나가 마침내 72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놓지 않으니 환난도 핍박도 저를 좌절낙담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라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꿈이 얻어맞아도 달리게 했고, 헐벗고 굶어도 달리게 했으며, 옥에 갇혀도 좌절하지 않고 달리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꿈을 잃는 것은 인생 전체를 잃는 것이고, 꿈을 잃는 것은 믿음을 잃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여러분 생각이 부활하기를, 꿈이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꿈이 부활하면 영·혼·육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적맞은 꿈을 되찾으세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미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할렐루야!

잠을 자는 자는 꿈을 꾸나

달리는 자는 꿈을 이룬다

인간은 기대하는 것 이상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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