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인식이 출발점이다
문제인식이 출발점이다
올해 우리 교단의 슬로건은 “이대론 안 된다! 일어나 빛을 발하자!”이다. ‘이대론 안 된다’는 말은 지금 현재 상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목사님께서 종종 하시는 “정말 무식한 사람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처럼,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기 때문에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지 않는다.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라는 적과 싸워야 했다. 대면예배가 중단되고 교회와 기도처들이 문을 닫는 사상 초유의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모이기에 힘쓰지 못하게 하고 찬송과 기도를 멈추게 하려는 악한 마귀와의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모든 상황과 환경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전쟁이 끝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목사님이 새해 슬로건을 통해 현재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일까? 많이 해이해진 느낌이다. 대학부에서 청년대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자신의 상황이나 진로 때문에 주의 일을 좀 쉬어야겠다는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 예배와 기도시간까지 타협하려는 친구들도 종종 있다. 각자 믿음의 분량이 다르기에 누구는 강하게 혼을 내고 누구는 타이르고 하지만, 사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
(마6:33)! 나 역시 청년 시절을 직접 경험했기에 그렇게 말하는데도 더러는 당장 눈앞에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더 우선으로 생각한다. 이미 결정을 해놓고 교역자에게 허락을 구하는 식이다. 그러면 결국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지만 마지막엔 이렇게 당부한다.
“크리스천에겐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없이도 잘 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저주다.” 즉 그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라는 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라는 걸 알지 못했다. 이렇듯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지금 나의 마음가짐은 괜찮은가? 나의 신앙은 이대로 괜찮은가? 문제인식이 곧 변화와 성장의 출발점이다.
신혁주 전도사
그립습니다
우~~웅 우~~웅…. 또 그 집사님이셨다. “목사님, 저희 언제 교회에 갈 수 있나요?”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예배가 생각보다 오랜 기간 진행되니 걸려온 문의전화다. 중고등부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에게도 이 정도이니 다른 곳의 상황은 더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꿈을 통해 귀한 메시지를 주셨다.
꿈에서 아내가 이시대 목사님을 만났는데, 아내가 “비대면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줌(화상모임)으로라도 열심히 뛰고 있으니 그래도 마음이 좋지 않으세요?”라고 여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시대 목사님께서는 이전에 보여준 적 없으신 슬픔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 가득한 낯빛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너는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해 슬펐지? 엄마를 직접 만나서 보고 싶은 너의 마음처럼 나도 성도들의 얼굴이 직접 보고 싶구나.”
아내의 꿈 이야기를 듣고 번뜩 깨달았다. ‘아! 주의 종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아프셨을까. 아무리 서울교회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이시대 목사님을 보고 싶다고 한들 목사님께서 우리를 보고 싶어 하시는 마음과 감히 비할 수 있을까. 하물며 수많은 영혼을 해산의 수고로 낳고 기르신 총회장 목사님은 어떠하실까.’
평생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가르쳐주셨던 목사님이셨다. 또한 언제나 당신 스스로가 최전선에 앞장서셔서 양무리를 푸른 초장으로 지금까지 인도해오셨다. 그런 목사님께서 오히려 “지금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지혜롭게 잠시 대면모임을 갖지 말고 기도하며 때를 기다리자.”고 말씀하실 때 목사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 듯 아프셨을까.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시는 이때에 모두 정신 차리고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외치시는 목사님, 불같은 사자후로 성도들에게 일침을 가하시곤 뒤돌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밤을 지새우며 모세처럼 기도하실 목사님을 떠올리니 마음이 미어진다.
다행히 이 글을 쓸 무렵 제한적 대면예배가 허용되었다. 때가 되매 일을 이루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이다.
이현승 목사
어머니와 대학교수 딸
‹23세에 혼자되신 어머니의 유복녀로 태어난 딸이 있었다. 어머니의 희생적인 수고로 유학도 하고, 나중에는 저명한 대학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이후 교회를 떠났던 딸은 어머니의 권면으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잠시 교회를 둘러보는데, 실망이 컸다. 여자들이 모여서 남자들 험담을 하고, 장로가 다가와서는 처음 본 자신에게 아들 대학 입학을 청탁하고, 회의실에서는 다투는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왔다.
너무 화가 난 딸은 어머니의 손을 끌고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때 조용하기만 하던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딱 하루 교회에 와서는 참 많이도 봤구나.”
이 말에 딸 교수는 무너졌다. 생각 없이 교회에 다닌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보는 수준과 자기의 보는 수준은 하늘과 땅보다 큰 것이었다.›
누구든 자기의 수준만큼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며 삽니다. 그런데 대개 내 눈에 보인다고 하는 것은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먼 것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자꾸 거짓이 보인다면 내가 거짓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교만이 보인다면 내가 교만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기꾼의 눈에는 사기꾼이 가장 잘 보이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 옆으로 가보십시오. 섬김만 보입니다. 기도의 사람 옆으로 가보십시오. 기도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격의 변화는 믿음의 발걸음에 있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입니다.
비누는 자기 살을 녹여 상대의 더러움을 없애줍니다.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그건 비누가 아닙니다. 소금이 녹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자가 참 크리스천입니다.
‘나는 녹는 비누인가, 녹아 사라진 소금인가?’ 생각해봅시다.
다시 시작합니다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잃게 만들고, 희망을 앗아가는 부정적인 존재로 우리의 한해를 통째로 흔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잃음의 자리 다음에는 새로운 일의 시작이 있고, 절망 뒤에는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2018년 시작했던 유학원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코로나19 덕분에 업무를 종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20년 이상 훈련받은 기도를 시작하면서 밤을 새웠고, 통곡으로 회개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의 기도 끝에 주님께서는 정말 좋은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사십여 년의 서울살이를 청산했고, 지금은 경주 안강이라는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주님이 주신 또 다른 일을 시작하여 버림 뒤에 찾아온 다른 축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통으로 보냈던 시간 동안 얻게 된 것 한 가지는 ‘나’를 온전히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밤마다 떠오르는 내 생각과 의지를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두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내 뜻인지 주님의 뜻인지 몰라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다시 돌아와 회개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간구했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내 뜻대로 행하는 일이 있을 때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일이 진행되지 않고 막히고 차단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겠노라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로 고백하지만, 평생을 살아오면서 형성된 한 개인의 생각과 의지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곤고한 일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고백하지만, 순간마다 찾아드는 인간의 생각과 계략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한해의 모토를 새롭게 세워봅니다. 이전과 달리 ‘나’를 버리고 ‘내 생각’을 비우는 일입니다. 버리고 비운 그 자리를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는 나의 품성과 성향과 인격에 맞는 소중한 일거리를 주시고 코로나 19의 위협과는 상관없는 평강으로 다스려주심을 믿습니다.
새로 시작한 일은 요즘 인기 있는 스터디카페입니다. 예전 학원업과 달리 100% 전산화되어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날로그와 인공 지능의 간극 사이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지만, 그 또한 주님의 다스리심으로 이루어진 일이라 주어진 시간을 그동안 바삐 산다고 뒤로 팽개쳤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시골 산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행복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대면 오픈예배를 드려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자유 집사
경영수업
코로나19의 여파로 배달시장이 점차 커지던 지난 4월, 나는 배달전문 식당을 하나 더 오픈했다. 많이 벌면서 수입은 엄마가 다 가져간다며 소박함이 묻어나는 투정을 하는 딸아이에게 사업자등록을 해주며 가게 수익과 지출 고정비, 원가계산까지 모두 일임을 시켜주었다. 신이 난 딸아이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시장조사를 했고, 매출대비 이윤이 작다며 이윤창출의 딜레마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배달 독과점 시장과 수수료 등 배달앱 프로그램 구조를 이해한 딸과 나는 서로 투명하게 공유하며 이윤추구 돌파구를 모색했다.
한때 딸아이는 또래 아이들은 대학 다니며 스펙 쌓기에 바쁜데 자신은 배달이나 하고 있다며 비관에 빠지기도 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공부할 나이인데.’ 하며 안쓰러워했다. 그즈음 이시대 목사님이 가게에 오셔서 예배 중에 휴학하고 있던 딸에게 “대학이 중요하니? 빌게이츠, 스티브잡스도 대학 안 나오고도 성공했다. 착실히 배워서 경영자가 되라.”며 큰 위안과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배달, 포장, 서빙, 설거지, 고객응대 등 일인다역을 하는 딸에게 늘 주입시킨다. “모든 경험은 귀중한 기념품이며 값진 재산이다.”, “네 또래 아이들이 하지 못하는 3D 업종을 이겨내고 꼭 월급 주는 자가 되어라. 일머리가 명석한 넌 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가 있다. “너는 사랑을 책으로 배웠구나.” 하는 말이다. 사랑을 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경영도 책으로 배운 것보다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부딪치며 경험하는 것이 산교육이다. 목사님 말씀대로 경험이 최대 자산이고, 최고의 공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작은 배달 식당을 경험케 하시고, 그 경험으로 더 큰 것을 이루게 하신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