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라는 안경을 끼고 성경을 봐라(말3:6~12)
모든 문제는 ‘왜’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원인이 보이고, ‘어떻게’라는 안경을 쓰면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이 매일 잔소리를 하실 때 투덜거리지 말고 ‘왜 저러실까’ 생각하면 ‘아! 나를 사랑해서, 나 잘되라고 저러시는 구나.’ 알게 되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그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해서 건강하자.’라는 구체적인 답을 얻게 됩니다.
성경 말씀도 동일합니다. 그냥 ‘올해는 성경을 일독해야지.’ 하는 것도 좋지만,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왜’라는 안경과 ‘어떻게’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고, 우리의 삶에 왜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책을 얻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왜? 성경 첫 장 첫 구절에 하나님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공포하신 것입니다. 또한 같은 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씀하심은 하나님이 인생들의 창조주요, 주관자가 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분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답이 나옵니다(고후1:18). 창조주 앞에 피조물이 어찌 ‘아니오’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왜 성경은 구약을 통해 계속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하고, 마침내 마태복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록했을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고, 또 우리에게 죄와 병과 가난과 고통을 주는 마귀의 일을 진멸하기 위함입니다(요일3:8). 아담의 죄로 인해 마귀의 사슬에 묶인 우리를 구원하는 길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로서만 가능했기에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인자로 오사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권세를 받으신 예수, 그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주심으로 악한 영들을 물리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늘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우리 삶에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 병의 원인이 귀신이었구나. 가난도, 다툼도, 고통도 귀신 때문이었구나.’ 하고 깨달아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하면 불 꺼진 항구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도적도, 강도도 몰래 틈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소멸치 않을까요?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성경은 분명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특별히 방언기도를 많이 하라고 하셨을까요? 방언은 악한 것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준 자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2). 그럼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답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5).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6:18).
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죽듯, 너희도 예수에게서 떨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나 사울처럼 말입니다. ‘아하! 내 삶이 죽었던 것은, 내 삶이 메말랐던 것은, 내 삶에 열매가 없었던 것은 내가 포도나무에서 떨어졌기 때문이구나.’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면 다 된 겁니다. 절대 예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와도, 세상의 어떠한 유혹이 밀려와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면 내 삶에 축복의 열매, 생명의 열매, 행복의 열매, 건강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만물의 주인이심을, 하나님이 축복의 원천이심을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면 죽지만, 십일조만은 시험해보라고 하셨습니다(말3:10).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말3:11~12)고 하셨습니다.
“아! 내가 될 듯하다가 안 된 것은, 자꾸 내 삶에 해충이 끼는 것은 내가 십일조를 안 해서,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구나.” 이렇게 알았으면, 십일조 노트를 만들어서 제대로 하면 됩니다. 장사를 해서 매일 매출이 나거든 십일조 봉투를 만들어 매일 넣으세요. 록펠러는 십일조만 계산하는 팀을 따로 꾸렸다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이뤄진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위대한 인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기록하셨을까요?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라는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그대로 행하면 그들처럼 우리도 한 시대의 맥을 긋는 위대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사 당신의 친구라 할 정도로 신임하신 것은 그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나 하나님의 명령 따라 무조건 고향과 친척을 떠났고, 백세에 얻은 아들도 제물로 드림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야곱은요?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보다 당장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고,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말씀하시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임금착취와 사기결혼 등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거기에 적응하여 성공한 야곱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자를 위로하시고, 또한 격려하신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요? 꿈을 가진 자는 지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고,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않는 자의 결과를 보여주심으로 죄악과 싸워 이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애굽의 종으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살길을 마련해준 것을 보여줌으로 우리도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롬12:21). 입다를 통해서는 환경에 굴하지 말라는 말씀과 더불어 서원은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갚을 것을 가르치셨고, 에스더를 통해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 금식기도의 위력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의 결말이 무엇인지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다윗을 통해 죄보다 회개가 중요함을, 한나를 통해 애통하는 기도의 위력을, 다니엘을 통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통해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고, 그 후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게 됨을 알게 하셨고(히9:27), 천국은 돈으로 가는 것이 아니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임을 말씀하셨습니다(요14:6). 4명의 친구가 중풍병자를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이야기를 통해(막2) 예수님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말라(히10:39), 급난지붕(急難之朋), 곧 힘들고 급할 때 찾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울(고전10:11)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짝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사34:16). 그러므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풀리고, 답이 나올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먹어야 영이 살고, 영이 살아야 범사에 잘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왜’, ‘어떻게’라는 안경을 쓰고 매일 하나님 말씀을 상고합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할렐루야!
원인을 알면
문제가 풀린다
망원경과 현미경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