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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숫물이 돌을 뚫는다

1073호 · 2020-11-29
겨자씨만한 믿음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에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끊임없는 반복이며, 한 가지 일에 큰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1만 시간 동안 반복하고 지속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고 하는 말과 같다. 낙숫물이 한 군데에 꾸준히 떨어져내려 돌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매진하면 성공하게 된다.

기도하다가 기대했던 대로 잘 되지 않으면 쉽게 기도를 놓을 때가 있다. 씨앗을 심고 나서 다음날 바로 수확하려고 하는 농부는 어리석다.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까지는 햇빛과 물이 공급되어야 하고 시간도 걸린다. 목사님 말씀처럼 기도의 독이 찰랑찰랑 찰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크게 쓰임을 받은 인물들은 모두 거룩한 기도의 습관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진심을 다해 꾸준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때로는 놀라운 생각을 통해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반복해야 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넘길 때 좋은 습관이 만들어진다.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성공에 가깝다.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다.

우리 모두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도록 선택하고 결단하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김성일 집사

cre8tor@naver.com

신앙논객

한 사람의 영향력

대한민국 재계의 큰 별이라고 할 수 있는 모 그룹 회장이 지난달 별세했다. 사람은 가도 말은 남는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많은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

그의 말대로 그 기업은 한 명의 천재와 인재를 얻기 위해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가게 한쪽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는 물건을 만들던 삼류 전자제품 회사를 세계 1위 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와 세미나를 통해 수없이 들었던 성공의 비결들을 알고 있다. 변화와 혁신, 주인의식, 인재 제일주의 등등…. 이는 자기 분야의 정점을 찍은 ‘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짧은 생을 사셨고, 그보다 더 짧은 3년 반 동안 그리스도(구원자)로서의 공생애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무려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아니, 이 땅에서 100년 안팎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히 살아야 할 내세의 운명까지 바꿔놓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의 길을 따르며 그들 역시 또 다른 ‘한 사람’이 되었다. 더러는 안락한 삶을 포기하면서, 더러는 핍박과 순교를 무릅쓰면서, 더러는 양보와 헌신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총회장 목사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니까 지난 36년 동안 전 세계 70개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통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리더(Leader)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Followers)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 변화와 성장을 일으키는 자다. 전무후무한 최고의 리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자처하는 우리는 과연 어떤 ‘한 사람’이 될 것인가. 오늘 하루도 각자가 서 있는 땅을 기름지게 하고 예수의 향기를 발하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신혁주 전도사

lessedmic@naver.com

낮은 울타리

생각의 전환

뉴스를 틀면 아쉽게도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더 많이 나옵니다. 자극적인 정보와 이야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래서 더 쉽게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런 뉴스에 많이 현혹되었었습니다. 취업에 관한 뉴스, 코로나에 관한 뉴스 등등 여러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꼭 저의 현실이고 미래 같았습니다. 저는 올해 대학교를 졸업합니다. 내년부터 취업을 준비하는데, 저도 모르게 ‘내년에 취업은 힘들겠지.’라고 생각하며 다른 계획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뉴스나 주위에서 요즘 취업 시장이 어렵다고 하니 그 말속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깬 것은 바로 목사님의 ‘멕시코 메리다 집회’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속 목사님은 세상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 일들을 직접 행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영상 시작 전 단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관습과 신념, 그리고 세상에서 정해놓은 것에 얽매이지 마라. 나는 다르고 내 생각이 내 인생을 움직인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그제야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믿음’과 ‘긍정의 힘’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썩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고 하셨는데, 늘 설교를 들으면서도 저도 모르게 ‘내 취업도 당연히 힘들 거야.’ 하면서 제 미래와 생각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 자신은 너무 연약해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뉴스나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이것들은 현재의 사회를 반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나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요즘 무엇을 시작하면 다 안 되는 시기라고 하지만 ‘나는’ 아닐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그럼 난 안 되겠네’ 하며 좌절하거나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생각을 전환해봅시다.

장수정

한라의 핀 샤론의 꽃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

얼마 전, 교회신문에 기고할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는 가운데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던 성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무슨 상황인지 모른 채 ‘부모님이 대구교회 다녀오신 거 아니지?’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땐 그저 어리둥절하다 못해 걱정부터 앞섰다. 그리곤 감염이라는 이슈와 상관없는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기사화되어 들려오는 소리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둘째 치고 이것저것 물어오는 지인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에이~ 우리의 삶 속에 주어지는 많은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지 뭐.’하며 지끈거리게 만드는 일을 내던지고 에어팟을 꺼내 찬양을 듣는 순간 온 세상이 찬양소리로 가득해졌다.

‘노이즈 캔슬링’, 이 단어는 [Noise=소음], [Cancelling=상쇄하다, 무효로 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고가의 이어폰이나 핸드폰에 꼭 장착되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이기도 하다.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 소음을 차단 또는 상쇄시켜 음악이나 음성이 더 잘 들리도록 도와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말씀하셨다(약1:19). 이는 여러 소리들이 귀에 들려오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난 잠시 욥이 고난 받을 때를 생각해보려 한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부자였지만 어느 날, 이 모든 부가 사라지고 자식들이 죽었다. 아내마저 욥을 저주하며 떠났다. 다행히 자기 몸은 멀쩡했다. 그러나 사단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를 나게 했고, 하나 남은 몸마저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하는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어디 이뿐이었나. 욥의 주변 사람들이 욥에게 “네가 지은 죄 때문이야!”,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어!” 하며 이러쿵저러쿵 많은 얘기를 했다. 어쩜 욥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상황보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욥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말이 아닌 귀를 닫는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침묵이 입을 닫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침묵은 입만이 아닌 귀를 닫음으로써 완성이 되는 것이다. 왜냐? 입을 닫을지라도 외부의 소리를 계속 듣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침묵할 수 없고 고요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 인생에 말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이 폭풍우와 같이 휘몰아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자리에 서있을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같이 비난의 소리 한가운데 움츠리고 있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 두려워하지 말고

‘노이즈 캔슬링’을 귀에 장착하고 침묵의 기도를 하자.

하나님 앞에서 침묵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고,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입을 닫고, 귀를 닫는다고 하여 모든 소리가 차단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말아야 하는 소리는 차단되고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만 듣게 되는 기도. 그것이 침묵의 기도이다.

올 한해는 TV를 켜도, 신문기사를 봐도 좋고 유쾌한 얘기보다는 낯선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혼란과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들뿐이다. 이 소리는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가 아니다. 깜깜한 밤, 모든 소리가 사라질 때 비로소 작고 작은 시곗바늘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침묵으로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기다림으로 표현하며 우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Dr. 권정미

jmgoo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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