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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한다(엡6:10~20)

1073호 · 2020-11-29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 예수중심교단의 변할 수 없는 강령(綱領)입니다. 이것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저와 여러분은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귀는 막고 오직 푯대만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길은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에 비유할 만큼 녹록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침륜에 빠지지 않고 당당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흔들립니다. 나약해졌다고 할까요? 인정에 흔들려 나약해지고, 문화적인 지식에 휩싸이고, 사람 말에 동요되어 놀라고 두려워하는 등, 초심을 잃은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습니다. 지휘관이 흔들리면 오합지졸이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적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요, 그런 지휘관에게선 한시라도 빨리 지휘봉을 빼앗아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안 됩니다. 이대론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대각성 운동입니다. 저는 하향평준화, 하향조정을 원치 않습니다. 상향평준화, 상향조정을 해야지요. 마태복음 25장에도 하나님은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신 것이 아니라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셔서 상향조정을 하셨습니다. 인정이 없다고요? 아니요, 능력 있는 자들이 더 많이 벌어서 없는 자에게 베풀면 되는 겁니다. 교육도 하향평준화하면 아이들의 실력이 떨어질 뿐입니다. 잘하는 애들에게 더욱 기회를 줘서 이 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게 해야죠. 일류기업으로 만들고,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되면 모든 자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한 명의 인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입니다. 고로 상향조정해야 합니다. 머슴을 살아도 정승 집에 살아야지요. 그래야 귓전으로라도 배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을 하향조정해서 다 같이 무능한 목자요, 무능한 성도가 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좋아할 놈이 딱 하나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분명히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6:12). 적을 알아야 백전백승하는데, 적이 누군지도 모르니까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적인 마귀란 놈은 대체 어떤 놈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용이요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계20:2). 그놈은 거짓의 아비요

(요8:44), 공중권세를 잡은 자요(엡2:2), 하와를 교묘히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해서 인류를 죄의 구렁텅이에 던진 놈이요(창3),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다 하늘에서 쫓겨난 놈들입니다(계12:7~9).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마귀란 놈은 타락하기 전에 완전한 인을 쳤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놈과 싸워야 하는데 대충 싸웁니까? 최고의 무기와 정보로 눈을 부릅뜨고 맞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고 하신 것(호4:9)은 마귀란 놈을 대적하는 데는 목사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도 똑같이 무장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귀신을 투입시켜 우리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가난하게 하고, 싸우게 하고, 분열시키려고 연합전선을 펼치니까 우리 모두가 정보와 무기를 갖추고 전투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상향조정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 전투태세를 갖추라는 겁니다. 정보도 입수하고, 최신 무기도 갖추라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성령의 검인 말씀과 기도로 재무장하라는 겁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시고 마귀의 공격을 받으실 때에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을 상고하고, 상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산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다독보다 정독이 중요하고, 정독보다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요. 또한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을 입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곧 무기요, 연장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기에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 성령을 받은 후에 세상에 나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최고사양의 무기를 주신 것입니다. 바로 성령의 은사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이렇게 9가지 은사입니다(고전12:8~11).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나가 적을 죽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면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삼십육계 도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해봤어.” 이런 겁니까? 여러분,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는 일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요단강 건널 때까지 하는 겁니다. 그놈들이 한 번 나가면 다시 안 들어옵니까? 그렇게 신사적일까요? 아닙니다. 그놈들은 나갔다가도 또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바로 자기 집이라고 우기며 더 악한 친구들까지 데리고 들어옵니다(마12:43~45).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안 쓰면요? 녹슬지요. 무기가 녹슬면 아무리 방아쇠를 잡아당겨도 총알이 안 나가고, 스위치를 눌러도 발사되지 않습니다. 요즘 주의 종들이 이런 상태입니다. 신학만 공부하러 다니고, 문화적인 지식으로 머리만 큰 가분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댑니다. 기사와 표적은 2천 년 전에 끝났다는 둥,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은 할 필요가 없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변질된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옳다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이 마치 멋진 목회자요, 교회라 여긴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모르고 성도들을 거기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우리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교회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냥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사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변질되려고 합니까? 누가 여러분을 꾑디까?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3~15)라고 통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제 귀에 쟁쟁 울립니다.

여러분, 하늘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고전4:20). 그 능력은 오직 기도로만 나타납니다(막9:29). 총만 가지면 뭐합니까? 총알이 있어야지요. 지갑이 명품이면 뭐합니까? 돈이 있어야지요. 목사면 뭐하고, 장로면 뭐한답니까?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지요. 그러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우리 주님은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눅13:32)고 하셨고,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고 하셨습니다. 귀신은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능력으로만 쫓아내는 것이고, 쫓아낼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은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무기요, 복음을 전파하는 연장입니다. 이 무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와 귀신의 공작에 넘어가지 않고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할렐루야!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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