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라 걸어라
주님을 따라 걸어라
어느 날 오지 선교를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던 선교사가 밀림 속에서 길을 잃었다. 밀림 속은 어둡고 무더웠으며, 방향도 알 수 없음에 좌절하고, 맹수들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다. 그렇게 헤매던 중에 다행히 원주민을 만났고, 선교사는 반가움에 길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원주민은 “이곳에는 길이 없습니다. 내가 밟고 나가는 곳이 길이니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말했다. 과연 얼마쯤 힘겹게 좇아갔더니 마을이 나왔다. 원주민은 다시 말했다. “길은 아는 사람만이 가는 것이니 혼자 다니지 마시고 꼭 아는 사람 뒤를 따라 가십시오.”
땅은 그대로 두면 여전히 땅이지만, 그것을 밟고 걸으면 길이 된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전혀 새로운 환경 가운데 처해 있다. 너무 길어지는 탓에 두려움과 좌절감이 가득하다. 그러나 사방이 막히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이 상황 가운데도 처음이요 마지막이 되시는 하나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예비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롬8:28).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널 때도 보이지 않던 길을 내셨으며(수3:17), 풍랑 이는 호수의 베드로가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물 위에 새로운 길을 내며 걷는 기적을 일으키셨다(마14:29).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그 무엇이나, 그 누구 때문도 아니니 원망이나 불평도 하지 말자. 혼자 다니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도하심을 따라 길이 없을지라도 믿음의 걸음을 걸어보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길이니 나를 따라 아버지께 나아가라’(요14:6).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내 동반자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감사는 깨닫는 자의 것이다. 깨닫지 못하면 절대 감사할 수 없다. 깨달은 만큼 감사하고, 감사한 만큼 행복하다.
현대인은 감사할 줄 모른다. 그 이유는 받은 것이 없다는 것.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깨닫지 못해 신세타령만 하고 있다.
감사는 그 은혜에 대한 반응이고 열매이다. 감사는 ‘감사하자’는 구호와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은혜’가 무엇인지 깨달을 때 감사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렇게 내가 구원받은 은혜, 나의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 은혜에 대한 반응이요, 그것이 바로 ‘감사’이다.
사도 바울은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고 했다. ‘기도 가운데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영혼이 깨어있는 것과 감사는 서로 직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감사가 사라진 사람은 자기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깨어있어라! 기도 안에서, 감사 안에서’이다. 우리 영혼을 깨어있게 하는 것은 기도와 아울러 감사다. 감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것이며, 은혜를 깨닫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탄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감사함으로 우리 영혼을 지켜야 한다. 감사할 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인생은 해석이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나를 행복하게 할 사람도, 불행하게 할 사람도 유일하게 나다. 그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못한다. 내가 불행하다 여기면 불행할 것이고, 행복하다 여기면 행복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해석이 바로 범사에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다. 지금 삶이 눈물의 골짜기 같을지라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해석한 다윗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처럼 해석만 잘하면 눈물골짜기가 변하여 축복과 기쁨의 골짜기로 바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다. 우리 범사에 감사하자. 그리하면 행복은 꽃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임택함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