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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영적 대각성의 혁명을 일으키자(마12:43~45)

1072호 · 2020-11-22

이대론 안 됩니다. 이 시대에, 우리 교단과 교회에 영적 대각성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닐진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일진대 무기도 없고 정보도 없이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들의 전략 전술은 기가 막힐 정도로 교묘하고, 그것들의 궤계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영악한데 우리는 편안하다, 안일하다 하고 있으니 그것들의 밥이 되고,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 받고 죄와 저주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2등은 없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 이기려면 우리가 깨어야 합니다.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야 한단 말입니다. 각성

(覺醒), 이는 ‘깨어 정신을 차린다’는 뜻으로, 영적 대각성은 잠자는 영혼이, 죽은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영적 대각성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충만에서 비롯됩니다. 웨슬리를 통해 일어난 영적 대각성 운동도 성령충만을 입는 것에 그 초점을 맞췄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500문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누가는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고 적었습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앉으셨지만,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고 가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마가다락방에서 120문도가 모여 전혀 기도할 때 성령이 그곳에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며 각자가 다른 방언으로 말했습니다(행2:1~4). 이처럼 방언은 성령의 외적 표징입니다. 기도와 구제를 많이 한 고넬료가 천사의 말을 듣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합니다. 베드로가 와서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성령이 그곳에 임하는데, 그들이 다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을 봐도 방언이 성령 받은 자에게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행10).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얻게 됩니다(행1:8). 권능은 권세와 능력을 말하는데,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되고, 그에 따른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는 말씀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을 잃으면 어찌 됩니까? 우리 삶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엄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셨고, 그 영인 성령도 빛이 되어 우리의 삶을 비추시고 인도하시는데, 그 빛을 잃으니 어둠만 가득할 밖에요. 어두우면 보이지 않아 넘어져 다치고, 도적이 들고, 어떤 게 죄인지 악인지도 모르고,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불이 꺼지면 귀신들의 천국이 되는 거죠.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불이 꺼진 삶이 어찌 되는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마12:43~45). 불이 꺼지니까 그 집에서 나갔던 귀신들이 얼씨구나 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자기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떠돌던 다른 귀신까지 데리고 들어와 더 가난하게 하고, 더 심하게 병들게 하고, 더 안 되게 하고, 더 심한 풍파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병들고 가난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영혼의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불을 다시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다시 입으면 어두움은 떠나갑니다. 귀신들이 떠나면 당신 안에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마12:28).

성령 충만함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막9:29). 성경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6:1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한 시간이면 기도가 막힙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쉬지 않고, 무시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7시간씩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90% 이상을 방언으로 기도하기에 가능합니다.

여러분, 만 불과 천 불의 능력이 다르듯 한 시간 기도한 것과 일곱 시간 기도한 것과는 확실한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에스겔은 환상에서 그가 강을 건너는데 제일 처음에는 발목에 차고, 그다음에는 무릎에 차고 그다음에는 강물이 허리에 차고, 그다음 헤엄치게 되었다 했습니다(겔47). 성령 안에서 헤엄을 쳐야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맘껏 사용할 수 있어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예언을 하고 말씀의 지혜와 지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신(新)신학자들은 방언을 금하고 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을 왜 하냐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본시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습니다(고전14:2). 오직 하나님만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비밀된 것을 아뢸 수 있는 것입니다. 못 알아들으니 마귀와 귀신들도 기도를 방해할 수 없지요. 그러니 방언기도야말로 하나님과의 직통전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방언은 마음의 곤비함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사28:11~1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상쾌함이 없고 근심, 불안, 초조, 절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또 많이 피곤해합니다. 이럴 때 방언기도를 하면 기쁨이 넘치고 피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방언기도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므로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 평안을 줍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미국에 사는 어느 성도가 차를 운전해서 가는데 갑자기 방언기도가 막 나오더랍니다. 기도가 하도 세게 나오니까 차를 세우려고 우측으로 핸들을 틀었는데, 바로 그 순간 앞의 차부터 여러 대가 연이어 추돌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성도가 우측으로 핸들을 꺾지 않았더라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인정했습니다.

이 좋은 방언기도를 왜 안합니까? 저는 방언기도를 하면서 ‘이 좋을 걸, 이 좋은 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전하건만 저들이 믿지를 않아요.’ 하며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여러분, 방언기도는 내게 유익을 주는 기도입니다. 방언기도는 영적 탐지기와 같아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가 어디가 아픈지, 내 삶에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장래에 관한 것까지 알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보다 더 방언을 많이 한 것을 감사했습니다(고전14:18).

여러분, 영적 대각성은 나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불을 밝혀야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내 영이 깨어나고, 내 영이 깨어나야 내 가족도, 내 이웃도, 내 나라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시로 방언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영에 불을 밝힙시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14:15).

할렐루야!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쫓겨 간다

기도는 영적 전쟁이다

방언기도로 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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