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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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열매

1067호 · 2020-10-18
평화의 열매
오늘의 메시지

목사님이라면?

전혀 예상치 못한 비난을 받을 때가 있다.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어 치밀어 오르는 화에 어쩔 줄 모를 때가 있다.

모든 감정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셨는데, ‘못 박으려고 해도 못이 어딨는지 모를 때가 많고, 망치도 어디 뒀는지 깜빡할 때가 많아요.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데 내 가슴에 못이 박힐 때가 많습니다.’라며 나는 절규한다.

총회장 목사님은 비난의 돌팔매질에 아파하다가 그 돌로 담을 쌓았다고 하신다. ‘바위처럼 파도와 맞서며 아파 절규하며 시퍼렇게 멍들지 마라, 모래처럼 파도를 안아주라’고 하신다. ‘그게 어디 쉬운 경지인가요? 공깃돌에 맞아도 이리 아픈데요. 아파 소리 지르며 끓어오르는 울화를 어찌하지 못하고 못 박혀 괴로운데 어찌 십자가에 못 박고, 어찌 담을 쌓나요? 어떻게 모래가 되나요?’ 지난한 일이다.

깨어 있어야 하겠다. 깨어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의 고삐를 쥘 수가 없다. 왜 아픈지, 왜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늘 깨어 내 마음을 보고 있어야겠다. 깨어 있어야 십자가에 못을 박고, 담을 쌓고, 내 몸을 쳐서 모래처럼 만들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답은 기도뿐.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고, 기도는 모든 것의 충만일 터. 그 크고 모진 돌팔매를 견디시는 목사님은 요즘 말로 치면 ‘상남자’시다. 마음은 원이로되 발치에 미치기가 힘들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묵상하기는 힘들다. 너무 깊고 완전하신 분을 예상하기가 버거운 인생 아닌가. 내가 알고 뵙고 듣고 이마에 잔주름까지 알고 있는 목사님을 묵상하는 것이 더 실질적이다.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저 허허 웃고 넘어가시겠지.’

예측이 된다. 아무래도 예수님보다는 목사님을 더 잘 알 수밖에. 도마처럼 만져 볼 수 있으니.

‘너희가 나를 닮기 바란다.’는 사도 바울처럼 내게는 목사님이 계신다. 부지런히 닮고 배워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쉬운가. 주께 기도하며 매달릴 뿐이다.

‘목사님이라면 어찌하셨을까?’ 상담 드리면 또 답이 뻔할 것 같다. 개가 웃는 이모티콘 보내실 테지. 하하. 생각할수록 명답이다. 목회의 백문백답이시다.

이광주 목사

에덴으로 귀환

해산의 수고

한 기업에서 신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제품이 만족할만한 성능을 갖추었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시장에 선보입니다. 제품 하나에도 그렇게 공을 들이는데,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에 얼마나 큰 고통과 수고가 필요하며, 또 하나의 영혼을 건지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랑이 필요할까요?

저는 서른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워낙 건강 체질이라 10개월이라는 임신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임산부가 경험하는 육체적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임신 초기에는 4~5개월 동안 입덧으로 인해 체중이 5kg이나 빠지고, 얼굴은 붉고 까슬까슬하니 형편없었습니다. 중기가 되어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았지만, 잠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흠뻑 젖어있고, 조금만 움직여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만삭이 되어서는 산더미만큼 거대해진 배가 부대껴 움직이는 것도 불편해지고, 후기 입덧이라고 먹는 것마다 소화시키기도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저의 부어있는 다리와 발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주물러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첫째 동생은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고는 ‘이태원 패륜녀 ㅋㅋㅋ’, 이렇게 톡을 남겼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진과 멘트에 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누나가 너무 안 돼서 엄마가 주물러준 거야. 이 다리 봐라. 퉁퉁 부어서 얼마나 힘들겠니?” 어머니 말씀에 숙연해진 동생은 제가 어머니께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한 줄 알았답니다. 또 하루는 매일 저녁 가족 기도시간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모님 회사에 갔는데, 낑낑거리며 도착한 저를 보시고는 가만히 목 뒤를 만지시더니 땀이 흥건한 걸 너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온유야, 너무 힘들겠다. 그런데 엄마도 그렇게 엄마가 되었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하나님께 진통을 최대한 짧게 하고 빨리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초산임에도 7시간 만에 순산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출산의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입원한 지 3시간 만에 아기가 나오는 문은 다 열렸는데, 아기는 준비가 안 되었는지 빨리 내려오지도 않는데다 머리도 커서 아기도, 저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아기가 힘들어하면 바로 수술할 수밖에 없다며 여러 번 제왕절개를 언급하셨고, 저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 모두 합심으로 기도하였고, 총회장 목사님께서도 “온유야, 잉태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순산하게 해주시지 않겠냐?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면 순산할 거야!” 하고 응원하시며 기도해주셨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수술해야 할 것 같다던 주치의 선생님은 아기가 내려오길 기다려주셨고, 저녁 8시 6분, 모두의 바람대로 건강하고 튼튼한 이삭이가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고귀한 생명은 여인의 수고와 고통을 통해 탄생합니다. 많은 눈물과 피와 땀을 쏟아야만 아름다운 한 생명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도 이와 같은 해산의 수고와 고통이 뒤를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피와 물을 전부 쏟아내시고 온몸이 찢어들 듯한 해산의 고통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의 사람들을 전도하여 교회를 세울 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들을 해산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켰다고 했습니다. 우리 총회장 목사님도 해산의 고통을 통해 우리를 지금의 신앙과 믿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를 해산의 수고로 낳았다며 “나만큼 너희를 사랑하는 자 없다, 네 부모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외치실 때마다 항상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성도님들도 영적 자녀를 위해, 그를 그리스도의 형상에 닮아가게 하려고 해산의 수고를 감내하고 계신가요? 비록 그를 위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눈물의 강이 넘친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구원에 이르게 될 때, 우리의 기쁨은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인이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 해산할 때의 그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감당할 수 없는 환희가 밀려오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성도님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 영광을 받게 되실 겁니다.

김온유 집사

울림 있는 삶

공황장애

지난겨울 딸아이가 출근 준비를 미리 한다면서 양말을 신고 두꺼운 카디건을 입고 자는 이상행동을 하더니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또 며칠 후 유난히 바빴던 점심시간에 갑자기 손발이 경직되고 안면 마비가 온 것 같다더니 털썩 주저앉아 공포에 가득한 표정으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러다 아이가 죽을 것 같아 급히 응급실을 찾아 정밀검사를 했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나는 극한 두려움에 주님만 찾았고, 절박한 기도와 회개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곧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다. 그 후 조기 퇴근한 딸은 음식에 집착했고, 순식간에 고도비만이 되어버렸다. 우울증과 급격한 신체 변화로 대인기피증까지 왔다. 나는 공황장애를 극복한 사례들을 샅샅이 찾고 공부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면 마주 보고 같이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찾아주었고, ‘공황장애는 절대로 죽지 않는 병이다.’, ‘10년을 전후로 자연 치유된다.’라며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주었더니 자신감을 되찾아 딸은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휴식만 취하던 오후 시간에 요양학원에 등록하였는데, 원장님은 개강 이래 최연소 등록자라며 칭찬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신이 난 딸은 “강의가 너무 쉽고 재미있어요.”, “오늘도 14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렸어요.” 하며 특유의 구김살 없는 밝은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그리고 계속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삶의 터닝 포인트는 의외로 역경 속에서 만난다. 우리 목사님이 국내에서 핍박이 심하자 해외로 눈을 돌려 세계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신 것처럼. 그래서 어쩌면 역경과 환난은 길이 막혔을 때 다른 길을 가르쳐주는 내비게이션일 수 있다. 그래서 나와 딸아이는 낙심하지 않고 오늘도 활기차게 산다.

추성숙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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