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다시 찾은 예배의 자유,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지난 8월 19일 수요예배부터 온라인예배를 드린 지 꼭 두 달 만에 다시 대면예배가 재개되었다. 지난봄에도 우리는 두 달간 온라인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다시는 예배의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그 당시의 바람도 몇 개월 가지 못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 공동체의 현실은 나 하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이 엄중한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 이웃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우리의 자유는 침해될 수밖에 없음을 경험한 것이다.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은 그만큼 치열한 것임을 절절히 깨닫는 2020년이 아닐 수 없다.
“예배는 언제 다시 열릴까요?”, “성전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이토록 소중하고 사모되는 일인 줄 이제야 깨달아요.”, “교회에 나가고 성도들과 만나 교제하는 일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몰랐어요.”
비대면 온라인예배가 지속되자 성도들의 안타까운 심정들이 전화를 타고 울려댔다. 성도들뿐 아니다. 목사님은 영상예배를 준비하시면서 지속적으로 안타까움을 표출하셨다.
“36년간 전국과 전 세계를 돌며 설교하는 것이 내 업이었는데, 이것이 내 삶의 정체성이었는데, 이것을 못하는 내 심정은 오죽하겠니?”
너나할 것 없이 코로나19 상황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누려왔던 자유의 소중함, 고귀한 자유의 가치를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두 달 동안 영상예배를 준비하며 정말 감사한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 편집팀은 목사님의 지시에 따라 여러 예배 영상을 찾아 편집하며 어찌 보면 이전보다 더 바쁜 일상을 지내야했다. 목사님께서도 설교하시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기존 예배영상을 찾아 일일이 확인하고 결정하기까지 어느 설교를 내보내야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고 지금 이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은 곁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하여 결정되었던 영상이 바뀌는 일은 다반사였다.
예배에 임박하기까지 수정하고 다시 편집하는 일들이 계속되었지만, 그 와중에 지난 화면들을 보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 그 화면에는 예배의 사회를 보는 장로님, 성가대원, 찬양팀, 반주팀, 율동팀, 설교하시는 목사님, 안내위원, 헌금위원, 그리고 예배 촬영을 하고, 자막 봉사하는 모습까지 예배를 위해 헌신하는 많은 분들의 아름다운 장면이 담겨있었다.
그런데 지금 비대면 온라인예배가 두 달여 지속되는 동안 그들의 모습은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성가대원으로, 찬양팀으로 찬양을 하고 싶어도, 반주를 하고 싶어도, 율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설교하고 싶어도 못하는 목사님도 계시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더 바쁘게 일할 수 있게 하시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울렸다. 더구나 예배를 마친 후, 목사님께서는 성도들이 영상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를 구구절절이 적어서 보낸 문자들을 모아 우리에게 보내주시며 이것이 우리가 받을 상임을 가르쳐주실 때는 그동안의 모든 피곤이 다 사라지는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목사님은 성도들의 문자를 보내주시곤 꼭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박이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이게 내 양식이란다.”
가르치는 자의 기쁨을 가장 최상으로 표현한 말씀이다.
인천교회에서 제한된 인원으로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서울교회 목사님들 중에는 그 예배에 참석할 수 없냐고 문의하기도 했다. 우리가 일상처럼 누리던 그 예배의 자유를 이제는 간절히 바래도 가질 수 없는 때가 올 줄 어찌 알았나?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할 수 있음에 진정 감사해야 하리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때가 누구에게나 온다.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 하늘의 상을 쌓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