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구음과 언어 (창세기 11:1~9)
하나님은 품속에 독생하신 인자에게 기름을 부어 이 땅에 보내려 하셨으니 그의 길이 곧 시온의 대로다(시84:5). 그가 오셔야만 인류는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영생과 복락의 길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그의 영광과는 상관도 없이 인간이 인간을 다스리려 하매 세상은 점점 하나님을 잃어가고 그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창11:4~6). 구음이 하나여서 모든 동물들도 방주에 들어가 홍수를 피했으나, 타락한 사람은 언어가 하나이므로(창11:1) 사람의 언어가 마치 창조자처럼 지배함으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경영함으로써 인류의 의지를 통합하고 이끌며, 설득하여 협동하게 하고 통치하며 고르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므로 인류는 하나님 없이 살려는 시도를 했다(창11:1~6). 이로써 인간은 당연히 멸망한다.
마귀의 사주를 받는 인간의 언어가 주인이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불가능하고 무력하게 하고 인간의 언어로서 인간을 통치하지 못하도록 이 땅의 구음과 언어를 흩으셨으니,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주관자가 없게 하려 하심이다. 그렇게 하여 멸망치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의도요, 은총이요, 긍휼이다.
하나님의 언어에는 영감이 있고 그 언어로 인류를 이끌려 하셨으니 인간 언어로의 통치를 막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게 하신 말씀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언어가 진리요, 우리는 진리에 복종한다. 진리만이 믿음의 언어요 능치 못함이 없고(눅1:37), 능력의 언어로 하나 된 구음이요 귀신들과 만물도 이에 복종한다(막1:27).
다른 과일은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지만 뱀이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니까 타락하고 저주받는다. 바벨탑은 하나님이 쌓게 한 탑이 아니다. 이게 인본주의다. 인본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고 철저하게 반대하고 사람의 소리로 통치한다. 그러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한 인류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신을 부정하는 사고체계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려는 것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4~6).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은 피를 주고 영혼을 사셨고, 천하 만민을 부르시고 모인 자들을 주님의 몸으로 인치셨으니 하나님의 교회다(행20:28). 교회의 외형은 인간의 연합체이나 이를 구성하는 힘과 권위는 성령이시오, 성령은 자기의 교회에 감독자를 세우시고 교회를 이끄시며 보호하신다. 감독자와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구성하는 그분의 지체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복종치 못하니까 영적 사람 되게 하셔서 진리를 복종케 하시려고 성령을 주셨으니, 인간의 뜻과 인간의 언어를 막으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복종케 하심이다.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의 언어, 지식, 여론이나 인간의 의견들이 있는 한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일치를 이룰 수 없다(롬1:18~32).
주인의 의지와 주인의 성품, 주인의 방향이 다 그 말씀에 있다. 이를 성령으로 아는 것을 진리라 한다. 자기가 주인 노릇하시려고 그가 다 만드시고 그가 다 기르시는 것인데, 인간 스스로가 주인 되고 인간의 언어가 주인노릇 할 때 그것을 다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신다. 인간의 언어가 인간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2~14).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주관자이시다. 사람의 언어로 모든 육신을 주관할 수 있을지라도 구원하지 못하니,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홀로 영원히 천지의 주재이시고 아버지이시다.
주여, 주여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고 그가 주인 되시어 나를 사용하시게 함이 복이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내 자손들아!
박덕규 목사
수사와 형사재판의 목적은 범인의 발견과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피의자가 운명을 하면 그 순간 중단되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이 재판중이면 공소기각 결정이 나고, 수사 중인 사건이면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최근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계 스타들이 금전적인 문제나 이성적인 문제가 발생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은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CCTV는 피해 다닐 수 있고, 승소율 높은 변호사를 선임하면 무죄판결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전지하신 하나님의 심판은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와 힘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나오면 오늘 믿고 내일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노후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꿈꾸며 노후준비를 하지만 정작 가장 시급한 것은 사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사후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인생,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입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주님, 교회가 너무 멀어요
유학원 업무를 시작한 후 잦은 해외 출장으로 매주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해외에서 드렸던 습관대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더욱이 눈의 망막이 변성되어 운전을 잘할 수 없는 상항이라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가량 소요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갈급한 성령의 간구함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서 조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담임 목사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목사님, 교회가 너무 멀어요.”, “오 집사, 다시 비행기 뜨면 또 해외로 나갈 거잖아.”, “네.”
목사님은 7시간가량 되는 긴긴 비행의 시간은 멀다 생각하지 않고 단숨에 내달려가면서 교회가 멀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교구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찡~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옳으신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두 시간 거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두 시간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덧 주님을 향한 사랑에 타성이 생겼고, 하나의 의식처럼 여겨지게 된 주일성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수요예배는 더더욱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아예 접고 살았다. 그러나 아직은 성령님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가 열려 있었다. 주님 향한 사랑과 그동안 받은 은혜를 생각하니 무릎에 다시 힘을 주고 움직일 수 있는 힘도 생기게 되었다.
변명과 게으름은 이렇게 저렇게 교회와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든다. ‘뭐 어때? 인터넷 예배도 예배인데.’라는 겁 없는 생각도 하게 한다. 사탄의 속살거림에 회유되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아깝고 안타깝지만,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한 고비를 넘고 다시 주님 향한 힘찬 도약을 할 수 있게 해주심이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져야 하지만, 한편으로 세상과 물질을 향하여 달음질했던 나에게는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소득도 줄었고 건강도 좋지 않지만, 주님을 향하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축복은 돈보다 더 큰 선물이다.
걱정, 근심, 모든 염려를 주님께 내려놓는 평안의 삶을 살겠노라고 수십 년을 기도했고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고 눈물로 기도한 세월이 얼마인데 여전히 내 생각과 내 뜻대로 보낸 시간들이 많이 후회가 된다.
그 사이 아파트도 좋은 가격으로 팔렸고, 유학원 업무가 많아져서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날마다 시마다 돈, 돈, 돈으로 가득했던 생각을 이제 탈탈 털어내려고 작심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 위에서 건재하고 계시는 주님을 다시 뵐 수 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는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새삼 되새겨본다.
오자유 집사
lovelyactor@naver.com
멋진 오누이
훤칠한 키에 빼어난 호남형이었던 오빠는 해양대학교 시절 기관사로 오대양을 누비며 큰돈을 벌었다. 졸업 후 건설업에 뛰어들면서 2년 만에 시골집을 현대식 가옥으로 부모님께 지어 드렸고, 뒤질세라 남동생도 대학 졸업 후 병원에 취업해서 동네에서는 아들 칭찬이 자자하여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용산에서 헌병으로 군 복무했던 오빠는 외출과 외박을 나와 함께 보냈고, 밤새도록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던 둘도 없는 오누이 사이였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월급을 모두 나에게 맡겼고, 그 돈으로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쇼핑도 하며, 멋진 오빠와의 데이트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었다.
그런 오빠가 결혼 후 변했다. 첫 명절부터 온갖 핑계를 대며 오지 않았고, 급기야 병든 노모를 양로원으로 향하게 했다. 바른말 한마디 할라치면 시누이 노릇한다며 오히려 분을 내어, 그래서 나는 마음을 비워갔다. 곧 관계도 멀어지고 연락도 두절됐다.
십수 년이 지난 후 예수를 믿게 된 나는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오빠와 화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어머니 소천 이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유산문제가 불거졌다. 4형제에게 균등해야 할 분배를 오빠는 장애인 언니를 제외하고 3등분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주변에서는 장애인 언니와 어머니를 모신 나에게 더 줘야 한다며 안타까워했지만, 난 흔쾌히 오빠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유인즉 오빠와 동생은 예수를 믿지 않았고, 돈 앞에 장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오빠와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고,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예수를 전했다. 목사님 설교를 유튜브로 보던 올케언니가 기적처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빠를 전도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해주었다.
‘거룩한 바보’, 영혼 구원을 위해 세상적인 손해를 스스로 감내하는 자들에게 붙여진 별칭이다. 오리를 가자 하면 십리를 가는,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도 주는 거룩한 바보! 그래서 내 형제를, 내 부모를, 내 친구를 구원할 수 있다면 손해인들 대수로울까.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목숨도 주셨는데…. 그래서 나는 거룩한 바보가 좋다.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