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죄의 속성
이곳 일본에도 조금 잠잠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것은 죄의 속성과 참 똑같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며 성령으로 충만할 때는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듯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도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절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러스를 철저하게 방역하듯이 죄로부터도 철저히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
인생은 장애물 경기인 듯합니다. 하나를 통과하면 또 다른 장애물이 나오고, 여길 건넜다 싶으면 그곳보다 힘든 무언가가 계속 다가오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주님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 평안한 인생은 절대자의 도움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이 예수님 곁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또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힘들다고 하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예수의 손을 잡읍시다. 아니, 손을 내밀어 예수님께서 내 손을 잡으시게 합시다. 내가 주님 손을 잡으면 놓칠 수 있거든요.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면 장애물도 잘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요셉이 천성이 착해서, 인내력이 대단해서 험한 세월을 잘 견딘 게 아닙니다. 주님이 그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살이 때도, 감옥살이 때도 주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넘어졌을 때 일으키시고, 힘들 때 안아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고난을 겪습니다. 이는 교만과 고집과 욕심 많은 우리의 자아를 깨트려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뜨거운 불가마를 통과해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듯 주님이 사용하시는 귀한 그릇들은 고난의 불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고난과 연단은 신앙의 여정에서 필수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 때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봅시다. 주님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할 것입니다. 터널의 끝, 고난의 끝, 코로나의 끝 또한 반드시 있으니까요! 오늘도 주님의 손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