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는 자에겐 기대할 것이 없다(삿7:1~9)
사사기 7장에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당시 미디안 족속은 수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곡물과 각종 과실을 침탈해갔고, 양과 소와 나귀 등 소유물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급기야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으로 도망하여 굴을 파거나 산성을 쌓아 생명을 보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를 주목하셨던 하나님은 때가 되매 이런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셨으니 그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군대를 조직하라 하십니다. 그때 모인 사람이 32,0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많다 하시며,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은 제외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았습니다(삿7:1~8). 하나님은 이도 많다 하시며 감군명령을 내리시고, 물가에서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상황도 시국도 모르고 타성에 젖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는 역대상 12장 32절에 ‘시세를 아는 자’라야 승리자가 된다는 말씀에 기인합니다. 결국 개처럼 서서 물을 손으로 핥는 300명만을 차출, 그들을 전쟁에 투입시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어떻게 300명이 그 많은 미디안 군대와 싸워 이겼을까요? 그 답은 이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7:2). 즉 기드온의 군대가 뛰어나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그들의 담대함과 능력은 곧 하나님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366번이나 계속 ‘담대하라,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라’고 한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전제가 깔린 말씀입니다.
사실 기드온도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 사사로 세웠을 때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3~15)라고 손사래를 치며 두려워했었습니다. 오죽하면 양털로 두 번이나 하나님께 징표를 구했을까요? 그런 겁쟁이 기드온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강하고 담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도 매사가 두려운 겁쟁이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담대하십시오.
모세에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갈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이 말씀은 목회 초기에 저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목회 35년을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5년이면 임기가 만료되는 대통령 빽만 있어도 두려울 것이 없을진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두려워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닙니까? 엘리야가 850대 1의 싸움에 담대했던 이유도, 느헤미야가 산발랏과 도비아의 훼방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적으로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기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 때 제자들이 두려워 떨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라고 나무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정부시책에 발맞춰 영상예배를 드리고 있고, 우리 성도들도 예방책대로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91편에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91:2~6).
그 하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1~3).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으나 사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한 것이,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옷깃 하나 타지 않은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말하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죄 앞에서도 담대해야 합니다. 악인 줄 알면서 악에서, 악의 무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죽인다’는 협박이 두려워서입니다. 물론 두렵지요. 그러나 죄와 피 뿌리기까지 대항하셨던 예수님처럼 담대해야 그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또 불의인 줄 알면서 친구를 잃을까 봐, 배척당할까 봐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 됩니다. 요셉처럼 단호히 죄를 잘라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오른손이 실족하면 그 손을 잘라내고 천국에 오라고까지 말씀했습니다(마18:8~9). 죽고자 하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문제에 봉착하면 대개 두려워 떱니다. 면접시험 치르러 갔을 때, 열심히 준비해갔지만 떨려서 하나도 생각나지 않아 죽 쑤고 온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워하면 보이던 길도 안 보이고, 들리던 것도 안 들리고, 이성이 마비가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클수록 담대해야 합니다. 제가 키르기스스탄에서 KGB에 잡혀갔을 때 ‘할렐루야’ 하며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담대하게 응대했더니, 그들이 되레 당황하며 저를 추방하는 것으로 일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돕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습니까
(히13:6).
부모들도 자식들 비위나 맞추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은 징계해야 합니다. 아들이 야한 그림만 그린다고 어느 어머니가 와서 하소연하기에 집에 가서 그림을 찢으며 혼내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한 후에 담대하게 제가 지시한 대로 했더니, 아들이 ‘엄마, 왜 그래?’ 그러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답니다. 늙어서 밥 못 얻어먹을까 봐 며느리에게, 자식에게 할 말 못 합니까? 그러면 진짜 늙어서 눈물 항아리 인생이 됩니다. 또 권력자나 재력가, 지력자도 존경은 하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여러분,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그 약속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고 놀라지도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할렐루야!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