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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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성공하려면 부지런하라

1039호 · 2020-01-26
오늘의 메시지

건반의 대가인 루빈스타인이 비행기 안에서 벙어리 피아노로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본 제자들이 말한다.

“선생님,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 그만하시지요!”

그때 루빈스타인은 말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알고, 이틀을 안 하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안 하면 청중이 안다네!”

‘부지런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하는 데에 열성적이며 꾸준하다’이다. 즉 무슨 일을 하든지 열성을 갖고 꾸준히 하는 자가 성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꾸준함이 재능을 이긴다.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이 그것이다. 달인은 꾸준히 반복함으로 만들어진다. 우리 목사님을 보라. 한 명을 놓고도 그 뜨거운 열정과 꾸준함의 결과가 이 민족과 열방을 이끌고 계시지 않은가!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목회 시작할 때의 흥분이 지금도 식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널 때나(수3:1),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나(수6:12,15), 아이성을 칠 때나(수8:1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고 기록한다. 심지어 도움을 요청하는 기브온 족속을 위해서도 ‘밤새도록 올라가서’ 적들을 물리쳤다고 한다(수10:9).

부요하길 원하는가(잠10:4)? 다스리는 자가 되길 원하는가(잠12:24)? 경영하는 것이 풍성하길 원하는가(잠21:5)? 목회의 성공을 원하는가(잠27:23)? 부지런하면 된다. 주님을 섬김도 열심을 품고 부지런할 것이다(롬12:11).

2020년, 매사 부지런하고, 나를 돌아보시며 형통케하실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자(욥8:5).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신앙논객

진짜 크리스천이 되자

요즘은 스마트폰의 발달과 동영상 콘텐츠의 대중화로 바야흐로 ‘1인 방송국’ 시대다. 채널을 개설하고 구독자를 일정 수준 이상 모으면 동영상 조회 수에 따라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크리에이터(동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를 꿈꾼다. 작년 말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조사에도 운동선수와 교사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런 풍조를 반영한 것일까. 얼마 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희귀병을 소재로 해서 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던 사람이 있다. 틱 장애, 일명 ‘뚜렛증후군’(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단순하며 반복적인 동작이나 소리를 내는 현상)을 앓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증상이 나타나는 중에도 꿋꿋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에 담아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고, 단기간에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심지어 그와 비슷한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영상이 삶에 희망을 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잇따랐다. 그런데 얼마 뒤, 그가 실제로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며 동영상을 찍기 위해 연기를 했다는 소위 ‘가짜 조작’ 논란이 제기되었다. 의사들과 전문가들이 보았을 때 영상 속 그의 모습이 어색하고 뭔가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논란이 점점 커지자 그는 자신의 병력과 처방전 등으로 대중들에게 해명에 나섰지만, 그마저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당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감만 키운 것이다.

교회 안팎에도 노략질하는 이리, 양 떼를 삼키는 삯꾼과 같은 소위 가짜 크리스천들이 많다. 거짓과 속임이 만연한 이 시대에 예수님의 방법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진짜 크리스천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 나도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마치 방송을 하듯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신실하고 거룩한 척 자신을 속이며 연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2020년,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과 세상 앞에 ‘진짜’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연기하는 짝퉁이 아닌, 진짜 크리스천이 되자.

신혁주 전도사

생명의 말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때 공원 관리인이 “여보시오, 당신은 누구시오! 어디서 왔기에 해가 지는데 돌아갈 줄 모르고 있소?”라고 하자 쇼펜하우어는 “바로 그거요. 내가 누구며,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것 때문에 지금 번민하고 있는 중이오.”라고 대답했다.

2020년 예수중심교단 슬로건은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자!’ 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광야를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정해진 시나리오다. 우리도 세상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나리오이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대학 정문에 이런 글이 새겨진 돌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법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야심에 찬 청년이 노 교수를 찾아와 자신은 앞으로 법학을 공부하겠노라고 자신에 찬 말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자 노교수가 “그래, 그렇게 공부를 한 후 무엇을 하겠는가?”, “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주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 명성을 얻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쁜 규수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노년을 맞이하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러자 청년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어 말했다. “그 다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죽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청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밤 청년은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다(히9:27).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번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 답이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주를 위해 살자. 주님 앞에 서는 날, ‘내가 참 잘 살았구나!’ 기뻐하며 춤을 출 것이다.

임택함목사

cjcc1004@hanmail.net

From Internet

어느 재미교포가 쓴 글

한국에 와보니 웬만한 동네는 모두 고층 아파트가 되었다. 가정집뿐 아니라 심지어 공중화장실에도 미국에서는 부자들만 쓰는 비데가 설치되었고, 주차 티켓을 뽑는 그런 촌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고 우아하게 자동인식으로 주차장에 들어간다. 모든 대중교통은 카드 하나로 해결되고, 집에 앉아서 햄버거를 시켜 먹고, 어느 집에 가도 요즘은 비밀번호나 카드 하나로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간다. 차마다 블랙박스가 달려있고, 방문하는 집마다 자동소파가 있고, 집안의 전등은 LED이며 전등, 가스, 심지어 콘센트도 요즘은 리모컨으로 켜고 끈다. 미국에서 나름 부자 동네에 살다 온 나도 집마다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럭셔리함과 고급스러운 제품들에 놀라고 부럽다.

집집마다 수십 개의 스포츠 채널을 포함 끝없는 채널이 나오고, 가는 곳마다 심지어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자동으로 초고속 wifi가 잡힌다. 역마다, 정류장마다 몇 분 후에 내가 기다리는 차가 오는 정보도 뜨니 옛날처럼 도로를 응시하며 버스 놓칠까 염려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도 우아하게 비데를 사용하면서 편리한 지하철, 고속열차 등을 이용하면서 싸디 싼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그리고 몇 걸음만 걸으면 먹을 수 있는 수없이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를 즐기면서, 자동소파에 눕듯이 앉아 수많은 TV 채널을 돌리면서, 며칠만 있으면 이 고급스런 라이프스타일에서 떠나야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한다. 전세금이 얼마나 비싼지, 정치는 얼마나 헛짓을 하는지, 아이들 교육시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지옥에 살고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차 한 대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아이들 스포츠나 과외 안 시키는 사람이 드물다. 같은 가격이면서 우리 집보다 방은 두 배 많고, 연이자도 2%대인 모기지를 가진 이곳에서 전세라는 훌륭한 시스템을 통해 매달 이자를 안 내고 살 수도 있는 이곳 사람들이 오늘도 모기지로 매달 3~4천 불을 내며 사는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연봉이 나보다 반이나 적은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차를 몰고, 더 비싼 걸 먹고, 더 편리하고 더 고급스런 제품이 가득한 삶을 살면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의료보험은 열 배나 싸고, 치료비도 열 배 싸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같은 10불짜리 밥을 먹어도 세금, 팁이 없어서 늘 25% 할인받는 느낌인 이곳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삶이 지옥이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50대가 되면 쫓겨나야 하는 현실, 줄어드는 일자리에 대한 말을 많이 듣지만 실제로 내 주변에 해고당한 사람은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많은데…. 

냉장고를 2, 3개 가지고 고기를 종종 뜯고, 회를 먹고, 좋은 차를 몰고, 편하고 고급스런 집에 살면서도 가난과 위기를 노래하게 된 내 조국.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안식과 평안이 필요함을 느낀다. 언제쯤 되면 우리는 진짜 가난한 북쪽의 우리 동포를 돌아다보는 그런 여유가 생기는 진짜 부자가 될까? 혹 진짜 부자이면서도 상대적 박탈감으로 가난하게 느끼고, 더 부자 되기에 힘쓰고 있지는 않은지 한편 염려하는 마음도 든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대한민국은 초고속으로 압축 성장한 나라다. 아마도 기네스북에 올려야 할 나라일 거다. 세계가 다 아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서 이민을 가려는 자들이 줄을 선다. 자신은 아니더라도 자식은 미국에 보낸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면 거의 다 그렇다. 자식을 이중국적자로 만든다. 무엇이 불안한지 위장전입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최선진국이다. 산에는 나무가 너무 많아 개간을 해야 할 지경이다. 위성 사진을 보면 온통 푸르다. 그리고 넓게 거미줄 같이 뻗은 고속도로. 다목적댐으로 물은 항상 넘실댄다. 홍수와 가뭄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더 기가 막히는 사연이 있다. 한민족은 5천 년을 배고프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쌀을 저장할 곳이 없단다. 어디 쌀 뿐이랴. 각종 먹거리가 산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뚱보가 넘쳐나고 당뇨와 혈압 환자가 줄을 잇는다.

세상은 이렇게 풍요로운데 왜 우리는 바쁘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운가? 좁은 땅에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부딪히며 살아간다. 개인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상대를 꺼리게 된다. 그래서 이웃을 멀리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진짜 불안한 이유는 이것이다. 북쪽에 야만인들이 산다. 그들은 배가 찢어지도록 고프면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바로 핵폭탄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항할 수단이 전혀 없다. 오직 있는 것은 한미동맹인데 요즘은 그것마저 흔들린다. 그래서 오늘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나라가 흔들리는데 좋은 집, 좋은 교통, 좋은 의료가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우리는 잘 살면서도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불만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떠나고 싶다. 떠나자니 조국(祖國)이요, 있자 하니 망국(亡國)이라.

그러므로 부디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기도하자. 안보 없는 경제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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