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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뒷말은 외식이요 위선이다

1030호 · 2019-11-24
신앙논객

성경 66권 중에 가장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썼던 책을 고르라면 단연 잠언(箴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총 31장으로 되어 있는 잠언은 하루에 한 장씩 읽기에도 좋고, 언제 어떤 장을 읽어도 유익하며 삶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귀한 말씀들이 무궁무진하게 담겨져 있다.

얼마 전, 잠언 전체를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입술, 혀,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이 담긴 구절들만 체크해보니 100개도 넘는 것이다! 마치 지혜로운 사람과 미련한 사람의 차이가 바로 그의 말에 달려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 살펴봐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금방 알 수 있다. 정치인의 경솔한 발언 하나에 정당 전체의 이미지와 지지율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사장의 말 한마디에 기업의 주가가 요동을 친다. 연예인이며 운동선수며, 또 최근에 떠오르는 직업군인 동영상 크리에이터들도 말 한마디로 그간 힘들게 쌓았던 인기와 명성을 한 방에 날리고 천 냥 빚을 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교회와 종교계도 예외일 수 없다. 목회자가 설교 중간에 잘못 든 예화 하나, 심방 중에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속마음, 교제와 모임 가운데서 오고 가는 사소한 말실수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무던히도 아프게 한다.

그중에서도 성도들을 가장 많이 넘어뜨리고 교회를 균열시키는 게 바로 ‘뒷말’, 즉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외식(外飾)이요, 위선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그 말들은 결국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있다. 특히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셔서 세우신 주의 종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는 것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가 다른 게 아니다.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의 종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다.

이시대 목사님께서 예전에 설교 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누군가에 대해 말을 하려면 마치 그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말하라고. 그의 앞에서 할 수 없는 얘기라면, 뒤에서도 하지 말자. 성령께서 탄식하신다.

신혁주 전도사

생명의 말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얼마 전 우리 교회 집사님의 모친께서 소천하셨다. 치매로 교회를 못 나오시게 된 이후로 오랜 기간을 요양병원에 계셨다. 심신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신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심방을 가도 눈을 감고 혀끝의 숨을 몰아쉬기도 힘들어하셨다. 임종 직전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나는 소천하시기 전에 꼭 눈을 마주하며 기도해드리길 원하여, 조금만 생명을 연장해주시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찾아갔다. 다행히 호흡이 안정되셔서 중환자실에서 기도해드린 순간, 눈을 번쩍 뜨시더니 나를 비롯하여 함께한 일행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응시하기 시작하셨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얼굴이 편안해 보이셨으며, 눈으로 무언가를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시 편안히 눈을 감으신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소천하셨다.

임종 직전의 마지막 그 눈빛과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이생에서의 마지막 눈 맞춤이었다. 분명 그 영혼은 기도를 들었고, 이제 준비되었다는 듯한 사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한 사람은 이제 영원 속으로 진입하고, 한 사람은 시간 속에 남겨지는 엄숙한 순간이다. 그 강렬했던 순간이 여운으로 남는다. 생과 사의 거리가 그리 멀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은 늘 죽음의 그늘이 그 앞에 드리워져 있음을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뿐이라’(삼상20:3)고 표현했으며, 사도 바울도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빌1:23)라며 생과 사의 멀지 않은 거리를 표현한다.

영원으로 간 사람은, 시간 속에 남겨진 사람에게 무언의 말을 남긴다. 반드시 영원을 준비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죽는 법을 알아야 하며, 그래서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이 배울 것이 많은 법이다(전7:2).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여진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기에(히9:27), 우리 삶은 반드시 죽음 이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누구에겐 떨어지는 낙엽처럼 가벼운 존재의 허무함으로 금방 잊힐지는 몰라도, 하나님에겐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신다(시116:15).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우주적 존재감으로 성도를 영광스럽게 받으시기 때문이다.

송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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