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민할 것은 무엇인가?(잠16:18~25)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너희의 신앙상태, 너희의 영적상태를 고민하고 울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신앙상태, 영적상태는 안전합니까? 우리의 신앙상태,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바로미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교만한가, 겸손한가’입니다. 섰다고 자랑하고 교만한 자는 다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뱀이란 놈이 하와에게 주입한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5),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교만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 뱀이란 놈은 본시 마귀요, 사단입니다(계20:2). 그놈은 교만을 부리다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한 자입니다. 그는 본시 루시엘이라는 천사장이었는데,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교만을 떨다가 그것이 발각되어 흑암, 곧 음부에 갇히게 된 자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14:12~14).
그렇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잠16:18). 추수할 때 알곡들 사이에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이 있지요? 다 가라지입니다. 농부가 그걸 어떡합니까? 뻣뻣하게 서 있는 것만 골라 다 뽑아 불살라버립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자였습니다. 자신은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자라고 겸손했습니다(삼상9:21).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로 달라졌습니다. 점차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사무엘상 10장에 보면 제사장이 늦었다는 이유로 자기가 제사를 드리는 월권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버리고 다윗으로 왕을 삼게 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삼상15:17).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치세의 확장으로 인해 자기의 업적과 권세를 자랑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질 때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한 꿈을 꾸었는데, 한 나무가 자라 하늘에 닿았고, 그 잎사귀가 아름답고 그 열매가 많아서 거기에 깃든 동식물이 많았는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베어버렸고, 그는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에게 임할 일로, 왕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짐승처럼 일곱 해를 지내게 된다고 다니엘이 해몽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왕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으나 왕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단4:30). 하나님은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그 꿈이 응하게 하셔서 그는 광야에서 소처럼 풀을 뜯고 몸이 이슬에 젖으며, 머리털이 독수리 털 같고 손톱이 새 발톱처럼 되어 짐승처럼 7년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기한이 차매 그루터기를 남겨주신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총명을 주사 그는 예전의 영광을 찾게 됩니다. 이제 그에게서 오만방자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7).
여러분, 돈 좀 있고, 좀 배우고, 권력이 좀 생기면 눈을 아래로 깔지요? 그거 안 좋습니다. 교만한 겁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가관입니다. 교만이 차고 넘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바리새인들은 아예 세리와 따로 서서 기도하며 ‘자신들은 차원이 다른 신앙’임을 강조합니다. 금식도 잘하고, 십일조도 잘 드린다고 하나님 앞에 교만을 떱니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인데 마치 자기가 잘나서 높아지고 많아진 것처럼 구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좀 살게 되면 ‘이 교회는 가난하고 병든 자가 많아서 나와 안 맞는다.’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쁘게 보실까요?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 자에게 주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봅시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8:14).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광야에서 돌리셨는지 압니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 너희가 누리는 풍족함과 편안함이 너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건지시고, 건조한 땅을 무사히 지나게 하셨으며,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였음을 기억하여 절대 교만하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가장 대표적인 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2:5~8).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그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요13:3~5). 하나님의 아들도 겸손하실진대 피조물이 교만을 떤다는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벧전5:5). 교만이 패망의 앞잡이라면,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잠15:33), 교만한 자에게는 욕이 오나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잠11:2), 교만한 자는 땅에서 엎드려지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시147:6),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셔서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사57:15),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시고(잠3:34),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시10:17). 그러니 우리 거만하지 말고, 교만 떨지 말고 겸손합시다.
여러분, 저는 교만의 끝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교만이 불러올 화가 무엇인지 정말 잘 압니다. 그래서 절대로 교만하지 않기로 작심하고, 행여 곧은 목이 될까 봐 때때로 저를 돌아보며 책망합니다. 나를 돌아보세요.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세요. 그리고 기도하세요. 기도하는 자는 절대 교만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성령에 사로잡힌 자는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의 괴수요’
(딤전1:15) 하며 낮아집니다.
물은 낮은 곳에 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합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낮아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는 자가 됩시다.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잠14:6). 할렐루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대접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