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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내가 네게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마7:7~11)

1014호 · 2019-08-04

하나님이 제게 “이 목사야, 네게 뭘 해주길 원하냐?” 하고 물으시면 저는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 아시다시피 이번 주부터 청소년 연합수련회도 있고, 어린이 여름성경캠프도 있고, 산상집회도 있습니다. 날씨를 좋게 해주시고, 사건 사고 없게 해주시고, 악한 자가 들어오지 않게 해주시고, 자동차 사고 나지 않게 해주시고, 다치거나 아픈 자가 없게 해주세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풍성히 먹일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보내주세요.”라고 답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저의 간구를 들으시고 필요한 것들을 넘치도록 보내주셨습니다.

가끔 제가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해줄까 하고 물으시면 뭐라고 답할 겁니까?” 하면 “은혜를 달라고 할 겁니다.”,

“성령충만을 달라고 할 겁니다.” 그러는 분들도 있고, 아예 답도 못하고 웃기만 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일견 바람직한 대답인 건 인정합니다. 은혜를 달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요. 성령충만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이 ‘네게 뭘 주길 원하냐?’ 하고 물으시면 지금 내가 필요한 것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답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제일 절실한 걸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처럼 말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5)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될 당시 20세였습니다. 통치 철학을 알 나이가 안 되었지요. 그러니 두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하나님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7~9). ‘이 나라의 평안이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답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구체적으로 자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부와 영광도 함께 주사 열왕 중에 이와 같은 이가 없게 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여리고 길목에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예수님이 오신 것을 알고 그는 목청껏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목소리에 간절함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그를 부르셔서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바디매오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10:51)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부를 때 이미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에 있을 때 보신 예수님은 그와 대화해보지 않고도 ‘그는 간사함이 없는 자’라고 다 아셨지 않습니까? 바디매오의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님은 이미 그의 소원을 알고 있었지만 ‘내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눈 뜨는 것이 소원인지라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고 눈을 밝혀주셨습니다.

여러분, 엄마 아빠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데, 체면 따집니까? 아프면 안 아프게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해야 하고요. 당장 살 집이 없으면 집을 달라고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구해야 합니다. 괜히 폼 잡느라, 아니면 창피해서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느헤미야는 그 기회를 잘 잡은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성문이 불에 타서 엉망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일을 슬퍼하다 금식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겠습니까? “하나님, 제가 술관장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지만 포로로 끌려 온 속국의 노예에 불과합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울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왜 근심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조국에 대해 아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크게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조국의 상황을 설명했고, 왕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느2:5)라고 말합니다. 가슴에 절실했던 말이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이에 왕은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느헤미야를 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빌리러 갔습니까? 기도하고 갔으면 다른 소리 할 것 없습니다. 괜히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기회를 놓쳐 입도 못 떼고 오지 말고 바로 ‘돈 좀 빌려달라’고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에 한밤중에 보리떡을 구하러 간 친구처럼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모세가 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니 모세는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아들이 없어 끌탕을 하던 한나가 무엇을 구했습니까? 오직 아들이었습니다. 입다가 구한 것은 전쟁의 승리였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도 딸의 병 낫기만을 갈망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구체적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장황한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분명한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주기도문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마6:11)? 제가 손자들에게 ‘무엇을 먹을래?’ 이렇게 물었을 때 ‘아무거나요’ 하는 놈은 아예 안 줍니다. 지금 먹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말해야지요. 기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모르셔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앉고 서는 것, 우리의 폐부까지 다 들여다보고 다 아시지만 물으시는 것은 소망의 열도를 재기 위해서입니다. 소망의 열도가 높으면 언제 물어도, 어느 상황에서 물어도 원하는 것이 툭 나오기 때문입니다.

“음~” 하며 오래 생각하는 것은 지금 급한 게 없다는 거거든요.

당장 일자리가 없습니까? 앞뒤 사설 빼고 “하나님, 일자리 주십시오. 벌어야 가족이 삽니다.”라고 기도하세요. 병들었습니까? 바디매오처럼 “병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하세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세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들으십니다(마6:6).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구하세요. 미사여구 쓰지 말고 직고하세요. 배고프면 엄마에게 “밥!”, 이렇게 하듯 하나님께도 핵심을 가지고 구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구하는 것을,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절대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자를 때 잘라질 때까지 톱질을 해야지 중간에 힘들다고 멈추면 송진이 나와 더 이상 톱질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도하다 포기하면 악한 것들이 달라붙어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는 기필코 응답 받고 말리란 정신으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처럼, 저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할렐루야!

필요한 것을 조목조목

적어서 기도하라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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