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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잘못된 인식의 변화 없이 미래는 없다(잠19:1~8)

1011호 · 2019-07-14

잘못된 인식의 변화가 없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잘못된 인식’은 고정관념과 같은 틀인지라 그것을 깨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오가 지구가 둥글다고 했을 때 많은 자들이 비웃고 비난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다 멀리 나가지 못했습니다. 나가다 벼랑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만일 그 인식이 깨지지 않았다면 신대륙 발견은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이 세계가 하나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식이란 안경과 같습니다. 내가 파란 안경을 끼면 만사가 다 파랗게 보입니다. 빨간 안경을 쓰면 다 빨갛게 보이고요. 사물이 초록이든 노랑이든 제대로 보이지 않고 퍼렇게 보이고 뻘겋게 보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상황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나 구역을 인수할 때 사람은 인수인계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이래서 안 좋아.’, ‘저 집사는 이러저러해서 애물 덩어리야.’ 하고 전에 있던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형성된 인식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제 경우가 그런 거 아닙니까? 교계에서 이단이니, 잘못되었다느니 하니까 사람들이 그 안경으로 저와 우리 교단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눈이 다쳐 선글라스를 끼고 설교하는 사진을 돌려보며 ‘그렇다더니 정말 이상하네.’ 이러는 겁니다. 자고로 병에 술을 담으면 술병이고, 오물을 담으면 오물통이 되는 법입니다. 인식한 대로 말과 행동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유튜브 설교영상을 보고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설교를 직접 들어보고, 귀신 쫓는 성령의 역사를 직접 대하고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 우리 교회를 찾는 자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성경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저 막연한 신, 타종교에서 생각하는 신적 개념 정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인식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눅18:27), 이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롬4:17). 그래서 그분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빌4:13). 그분이 주시는 권능으로 귀신을 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며 각색병을 고치며, 그분의 나라에 대해 증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성경 구절 중 가장 제게 확실하게 박힌 인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저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고, 한 사람이 있든 만 명이 있든 최선을 다해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말씀대로 하나님이 큰일을 제가 맡겨주셔서 지금은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고, 예수중심교단을 일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핍박과 모함을 받으면서 목회를 하면서도 왜 시험이 들지 않는지 몹시 궁금해 합니다. 그건 시험에 대한 저의 인식이 남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하나님은 저를 성장시키기 위해,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test)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부정적인 생각으로 보면 신명기 28장의 ‘저주’장만 보게 되지만, 긍정적인 생각으로 보면 ‘축복’장을 보게 되고, 하나님 말씀이 위협이 아니라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율법의 쇠사슬에 자신을 얽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복된 소식, 복음을 전하셨건만, 여전히 율법이라는 사슬에 매여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예수님이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병과 저주와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복음의 물결이 넘실대도 나와 무관한 것이 됩니다. 이런 자는 마치 서커스단의 코끼리와 같습니다. 말뚝에서 몇 발만 떼면 전기가 몸에 흐른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툭 치면 넘어질 말뚝만 빙빙 돌고 있는 덩치 큰 코끼리 말입니다. 코끼리는 전기가 차단되어도 도망가지 못합니다. 가지고 있던 인식이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무슨 말인가 하면 자신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못 살고, 아프고, 얽매여 살면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잘못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인식이란 생각입니다. 곧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면 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복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처음 천사를 통해 수태될 것이라는 예언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의 말은 이랬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식입니다. 남녀가 합해야 아이가 만들어지니까요. 그때 천사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1:35)며 마리아의 인식을 바꿔주니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마리아가 고백했고,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마리아를 통해 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고착된 사고, 교과서적인 사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냥 현재에 만족하고 이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발전이나 성장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인 바디매오, 2대째 소경인 그가 눈을 뜬 것은 비록 눈도 보이지 않는 소경이지만, 예수의 소문을 듣고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만 만나면 나도 볼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지요.

여러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다면 결국 세상에서 뒤처지고 말 것입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용기요, 그것이 지혜입니다. 괜한 고집, 아집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과 인식이 절실한 때입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북한도 인식이 바뀌어야 평화통일이 다가올 것이고, 주변국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경제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인식을 버리고, 범세계적인 생각을 가지세요.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세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하세요. 만사 부정적인 생각 대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생각을 주입하세요. 인식의 변화가 운명의 변화를 낳을 것입니다. ‘생각이 결과라’(렘6:19). 할렐루야!

변화가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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