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009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12번의 응답

1009호 · 2019-06-30
오늘의 메시지

올해 3월 초 1차 의료기관에서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도 놀랄 만큼 평안했다. 내 의지가 아님이 명확하다. 나는 민감하고 섬세한 성격이라 담대하지 못하다. 그러나 암 진단부터 두 번의 대수술과 항암치료 5회차인 지금까지 평강과 감사가 떠나지 않음은 주님의 은총이다.

암 진단 전부터 꿈으로 환상으로 음성으로 계시하신 것을 헤아려보니 이번 암에 관련된 것이 12번이다. 물론 내 수한을 알게 하신 것까지 포함하면 참으로 많은 응답을 주시고 장차의 일을 알게 하셨다. 기억에 남는 것은 우두머리 천사가 나의 큰 암 덩어리를 떼어 치우고 하나님의 빛줄기 속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내어 그 빛으로 미세한 암들을 죽이는 광경이다. 이어서 수많은 수하 천사들이 같은 막대기로 빛을 쏘여 내 온몸의 미세 암세포를 죽였다.

‘전쟁은 이겨놓고 하는 것이다’,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이런 싸움에 평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참 좋은 의사와 병원이 예비되고 심지어 알지도 못하던 장로님이신 한의원 원장님으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내 온갖 고질병을 치료받고 있으니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 건강을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셔서 모든 것이 넘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성도님들께 담대히 선포합니다. ‘나는 완쾌 되었다.’라고. 그 결과를 여러분께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당신의 제자 목사들과 전도사들이 병중에 소천하고 고통받는 모습에 괴로워하시며 외치신 말씀. “죽지마라 죽지마!”. 부모보다 먼저 가는 자식을 둔 심정이 오죽하시랴. 목사님의 간절한 바람으로 제가 소생하였습니다. 강건하십시오. 사랑합니다.

이광주 전도사

소망의 언덕

할 수 있다!

중고등부 예배에 처음 온 한 학생이 우리가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는 모두 세뇌된 거 같아요.” 재미있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그 아이가 내뱉은 세뇌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아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세뇌-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ㆍ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 이것이 사전적 의미입니다.

사실 세뇌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세수-손을 씻음’, ‘세면-얼굴을 씻음’, ‘세족-발을 씻음’과 같이 세뇌 역시 ‘뇌를 씻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뇌를 영어단어로 보면 ‘brain-washing’, 문자 그대로 뇌를 씻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 보니 세뇌라는 단어가 그렇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생각으로 가득 찬 뇌를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주셨기 때문이죠.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세뇌된 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의미입니다. 얼마 전에 집에서 아이들을 목욕시킬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올해로 초등학생이 된 첫째 아이는 혼자서 목욕을 잘합니다. 그런데 이제 막 세 살이 된 딸아이는 서서 머리를 감는 것을 무척 힘들어합니다. 그날도 머리를 감기는데 눈이 맵다며 떼를 부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욕조에서 놀며 기분이 좋아질 때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부엌에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욕실에 돌아온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첫째 아이가 욕실에 들어와 동생을 교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다.”, “자… 오빠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해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주먹까지 불끈 쥐고 시범을 보이는 오빠가 재미있다는 듯이 구호까지 따라한 딸아이는 그날 웃으면서 머리를 감았습니다. 저는 아들을 보면서 정말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우리 교회에서 자주 외치는 구호입니다. 때때로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벽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뇌 속 깊이, 뼛속 깊이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뇌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현승 전도사

From Internet

멋진 대결

조선 후기 효종 때의 명의(名醫)이자 우의정을 지낸 허목(許穆)과 학자이며 정치가이기도 한 송시열(宋時烈)은 아쉽게도 당파로 인해 서로가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송시열이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허목이 의술에 정통함을 알고 있던 송시열은 “비록 정적일망정 내 병은 허목이 아니면 못 고친다. 가서 약방문을 구해오도록 해라.” 하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정적인 허목에게서 약을 구한다는 건 죽음을 자청하는 꼴인데 말입니다.

송시열의 아들이 찾아오자 허목은 빙그레 웃으며 약방문을 써주었습니다. 아들이 약방문을 살펴보니 비상을 비롯한 몇 가지 극약들을 섞어 달여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허목의 못된 인간성을 원망하고 송시열에게 갖다 주며 ‘이건 분명히 독약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약방문을 살펴본 송시열은 그대로 약을 달여 먹고는 완쾌했습니다.

허목은 송시열의 병은 이 약을 써야만 나을 텐데 그가 이 약을 먹을 담력이 없을 테니 송시열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송시열은 허목이 야비하게 정적에게 처방을 구하는 자신을 죽일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송시열이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허목은 무릎을 치며 송시열의 대담성을 찬탄했고, 송시열은 허목의 도량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저 불독처럼 무조건 상대를 물어뜯으려는 정치 풍토에서 벗어나 현대에도 이런 멋진 인물들이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나도 건강할 수 있다

건강은 밥상 위에 있다

TV를 보면 하루 종일 시골밥상부터 세계의 진미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먹는 방송도 넘쳐난다. 보고 있으면 어느새 입 안 가득 군침이 돌고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지만 모두 몸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밥상 위에 건강과 맛을 모두 담을 수 없을까?

한때 장수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한 관심사였다. 일본의 장수지역으로 알려진 오키나와 노인들이 어류와 해산물을 즐겨 먹었고, 불가리아에서는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었다고 알려지면서 이런 식습관을 따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이런 음식들이 건강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음식만으로 장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건강한 식사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소를 균형 있게 공급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균형이라는 것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상태를 말한다. 만약 영양이 결핍된다면 청소년기에는 성장발달에 문제가 생기고 성인의 경우에는 건강에 이상이 발생한다. 반면 영양이 지나치면 비만, 대사 증후군과 함께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밥상 위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이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요즘은 지나치게 맵거나 기름진 음식이 유행하고, 쉽게 사서 빨리 먹는 인스턴트 음식은 우리 식탁의 균형을 깨고 있다. 결국 건강을 지키려면 이런 자극적이고 달달한 즐거움의 요소를 자제하고 가장 중요한 식생활이 건강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이장수 씨는 매일 아침 7시면 아침 식사를 한다. 단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식습관이다. 밥보다 잠이 좋다는 고등학생 아들은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등교한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나면 아내는 아침을 거른 채 잠을 잔다. 잠에서 깨면 아침 겸 점심의 첫 끼니를 해결한다. 이 집에서 건강한 식사를 하는 건 이장수 씨다. 아침 식사를 통해 하루를 시작해야 적절한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학생의 경우, 아침 식사를 거르면 두뇌 회전이 늦어져 학습능력도 떨어진다. 내가 무엇을 먹는지는 앞으로의 내 건강과 직접적인 영향 관계에 있다. 건강은 밥상 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래서 먹는 것이 우리 건강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Dr. 조희경 집사

pearl9230@naver.com

신앙에세이

성장의 딜레마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나지만, 그 믿음의 성장은 기도와 응답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믿음이 나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그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 제목이 클수록 기도 응답을 받았을 때의 기쁨도 크고, 믿음의 성장 폭도 그만큼 크다. 성장의 폭이 크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그만큼의 성장통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겐 많은 시련과 환난이 있다. 우리의 삶만 보아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그 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강하게 느끼던 그 순간은 보통 우리가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으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던 때이다.

성장의 시기가 한차례 지나가면 내적, 외적인 평안이 찾아온다. 시간이 더 지나면 다시 성장을 위한 마음속 갈망과 나태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동시에 생겨난다. 다시 그런 위기 속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피하고 싶지만, 그때의 은혜는 다시 경험하고 싶다. 간절한 기도 속에 있을 때의 고통을 알기에, 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 있을 때의 은혜를 알기에 하나는 피하고 다른 하나는 경험하고 싶은, 가끔 이런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야베스도 그렇게 기도했을까? 야베스의 기도 응답은 내 것이 되길 바라는데, 야베스가 그런 기도를 드릴 때의 처지는 되고 싶지 않다. 애교 부리며 하나님께 여쭤봐야지 생각한다. “하나님, 야베스의 기도에서 ‘늘’이란 단어 하나 추가해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상 4:10).

박찬영 집사

post.naver.com/imsofriendly

100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내가 매일 기쁘게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