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복인 줄 알아야 한다 (대하9:1~9)
솔로몬의 지혜와 명성은 외국에까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왕상4:29~31). 그리고 마침내 멀리 아라비아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소왕국 스바 여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명성을 확인하고자 먼 길을 불사하고 찾아 나섭니다.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아주 진귀한 향품과 엄청난 금과 보석을 싣고 말입니다. 약 1년 정도의 예산을 들고 갔다는 말도 있습니다.
도착해서 실제로 보니 모든 것이 소문 이상이었습니다. 솔로몬 왕궁의 부강함도 놀랍지만 특히 솔로몬의 지혜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습니다. 잠언서나 전도서를 읽어보면 솔로몬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것을 우리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코자 먼 길을 찾아간 스바 여왕이 솔로몬 앞에 쉬운 문제를 내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꽤나 어려운 문제를 제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어떤 문제든 지혜롭고 시원하게 답을 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의 지혜를 날마다 들을 수 있는 그의 신복들이 복되다며 부러워했습니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대하9:7).
그런데 정말 그의 신복들은 자신들이 복된 줄 알았을까요? 글쎄요, 7절의 말씀처럼 ‘항상’ 들어왔기 때문에 타성에 젖어 ‘그러려니’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를 통해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보고서 외국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옵니다. 안수 한 번 받으려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고, 상담을 받으려고 멀리서 오는 분들도 많습니다. 한국에 온다고 저를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제가 외국 집회 중일 때는 그분들은 적어도 보름 정도는 체류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만나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늘 안수도 받고, 지혜의 말씀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교인들은 그럴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성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뭐 다 그런 거지’ 하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너무 당연해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까무러쳐야 정상이거든요.
복이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복이 내 것이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바 여왕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여긴 솔로몬보다 우리가 더욱 대단한 존재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유는 솔로몬보다 더 크고, 더 지혜로우신 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41~42).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데, 그 성령이 바로 솔로몬보다 더욱 크신 예수님의 영입니다. 물론 솔로몬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기에 지혜로웠지만(왕상10:9), 아예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니 우리가 얼마나 복된 자일까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니 그분께 물으면 인생사 거칠 게 없습니다. 스바 여왕처럼 먼 길을 가야 할 필요도 없고, 바리바리 선물을 싸가지고 가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7:7~8).
물어보면 다 답해주고, 필요한 것을 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지혜이든, 물질이든, 병이 낫는 일이든 다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4:14). 솔로몬은 이 땅의 지혜만 말해줬지만,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은 죽음 다음의 세상에 대해서도 알려주시고, 책임까지 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묻지 않습니까? 왜 구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값비싼 향유를 원하시는 것도, 며칠을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분도 아닌데 말입니다.
자! 이제 솔로몬보다 크신 이에게 물어봅시다. “성격이 불같아서 자주 화를 내는데 이런 저를 어찌해야 하나요?”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얘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단다. 나는 화내는 자를 좋아하지 않아. 그런 자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합당치 않단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와 같아서 네가 수고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다 쓸어가지(잠27:4). 그러니 네 마음을 다스려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늘 성령 충만함에 있단다. 성령 충만하면 온유와 사랑과 인내와 절제의 열매가 맺히거든.”
또 물어볼까요? “저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도 예수님은 지체하지 않고 답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솔로몬보다 크시며, 지혜의 근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얘야, 자기 것을 찾는 자가 행복하단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가랑이만 찢어져서 아픈 법이야. 민물고기가 너른 바다가 좋다고 나가면 죽는단다. 참새라고 불행하겠니? 남의 집, 남의 아내, 남의 남편, 남의 직장을 좋다고 부러워하지 말고 내 것을 감사함으로 발전시켜봐. 맞지도 않는 남의 신발을 신으면 오래 걸을 수 없어. 종지가 장독을 보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장독은 늘 밖에서 태양과 비를 견뎌야 하는 고통이 있단다. 너는 작은 종지지만 주인 밥상에 매일 올라가지 않니? 행복에는 커트라인이 없단다. 네 마음에 달려 있고, 내 것으로 만족할 때 오는 거란다. 이제 알겠니?”
“청춘인 저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하고 구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라.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이뤄지는 법이란다.”라고 말이죠.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세상의 이치와는 다른 말씀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전8:7)고 했지만, 솔로몬보다 크신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장래 일도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요16:13).
그뿐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소경을 눈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고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은 우리가 아프다며 고쳐달라고 하면 고쳐주십니다. 더욱이 고쳐주실 뿐 아니라 그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사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가 고치게도 하십니다. 예수 이름 앞에 하늘과 땅과 땅 아래가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지혜자 솔로몬도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전12).
제발 예수님께 구하세요. 물어보세요. 악한 자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성령으로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계시해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고치시고 채우실 것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예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가하고, 모든 것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함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습관화하신 이유도 그것입니다. 우리도 늘, 무시로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막힘이 없는 만사형통의 복을 받읍시다. 성령과 함께 하는 우리는 정말 복된 자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화환을 보지 말고
꽃씨를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