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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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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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우 칼럼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옹달샘
창과 거울 window &Mirror
 성경상식
향유는 단지 화장픔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버려라 (마 5 :38~48)

바보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한 초막에서 외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그리웠습니다.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은 항상 웃고 다녀 모두들 ‘바보 소년’이라 불렀기에 모두 친구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소년은 배고픔의 고통보다 외로움을 못 견디어 스스로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또래 아이들은 그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따돌리기만 했습니다. 소년은 그래도 쉬지 않고 그들을 향해 친구가 되어 줄 것을 간청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말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친구가 되어주지.” 소년은 너무 기뻤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비어있는 회당에 끝까지 남을 수 있겠느냐’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 건물이 너무 낡아 다음 날 불태워버릴 예정이었습니다.

소년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이제 친구가 생긴다는 희망으로 그 건물에 자리잡고 앉습니다. 때가 되어 마을 사람들은 그 회당에 불을 놓습니다. 그 광경을 아이들은 재미나게 지켜봅니다. ‘언제나 소년이 뛰어 나올까’ 하며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길이 점차 세차게 올라도 소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것을 느낀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안에 소년이 있음을 말하고 구출하러 들어갑니다. 이미 소년은 질식하여 헉헉거리고 있었습니다.

구출된 소년은 아이들을 향해 “이제 친구가 되어 줄 거지?” 하며 흐릿한 눈길로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래, 이 바보야!” 하고 아이들이 흐느끼자 소년은 행복한 미소를 띠며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인터넷에 올려진 이야기의 줄거리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소년이 과연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번뜩 뇌리를 스치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 소년이 바로 우리를 친구 삼으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구나!’ 소년을 통해 아무도 영접하는 자가 없었고,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이 ‘자기도 구원 못하는 자가 남을 어찌 구원한다는 거냐’ 하며 조롱하여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목적을 위하여 바보를 자처하셨습니다.

잠시 바보처럼 수치와 모욕을 참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부활하여 승리하신 예수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나처럼 바보가 되어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도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자 조르면 십리 길을 동행하며 원수를 먹이라’고 하십니다. 한 마디로 바보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강팍하고 몰인정한 21세기에 이 무슨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냐’고 펄쩍 뛸 일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 친히 모범을 보이셨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 분이 진짜 바보였습니까? 아닙니다. 바보가 아니셨기 때문에 참으실 수 있었고 목적이 있었기에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명문가의 제사장으로 인품과 학식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고멜이라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하십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바보처럼 그를 아내로 삼습니다. 반문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고멜의 방탕과 음란은 끝이 없더니 나중에는 가출하여 음란한 노예 신세가 됩니다. 호세아는 이 기회에 고멜을 놓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명령하시기를 ‘그녀를 찾아 사랑하라’고 하시기로 그는 다시 한번 바보가 되어 돈으로 아내를 찾아옵니다.

호세아의 고통스러운 체험은 하나님의 심정이었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취할 때 주위의 조롱과 손가락질이 얼마나 따가웠을까요. 돈 들고 음란한 구석에 있는 아내를 찾아오는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이는 영적으로 간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심경의 묘사였으며, 지금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간음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절함이 표현된 것입니다.

바보처럼 끝까지 우리를 사랑한 하나님이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을 갖다 대는 것이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옷 달라는 것도 억울한데 겉옷까지는 못 주지요. 오리도 힘든데 십리길이 강제로 됩니까? 그러나 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바보처럼 속죄물로 내어놓고, 예수가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일도 마땅히 해야 합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부전자전 말입니다.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바보처럼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바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까지, 이해하지 못할 사람까지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쓸개를 빼어내야 합니다.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구제의 본을 보이고, 우리가 낮아져 남을 섬기면 그 행위로 인하여 진리가 전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예수께 있고, 복음전파에 있다면 오늘 바보가 되어 봅시다. 그러면 아마도 세상이 우리를 비웃을 것입니다. 영악하고 잇속에 밝은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바보들이라고 놀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과 하늘의 상이 있어 바보라 칭함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마음의 다짐을 하세요. 거룩한 바보, 능력 있는 바보, 똑똑한 바보로 살아보리라 다짐하세요. 그런 자에게 천국이 임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함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똑똑한 바보가 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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