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인자라고?

강원도 태백산맥을 넘는 관광버스가 힘겨워 보인다. 승객을 가득 실은 버스는 가까스로 정상을 올라 이제 내리막길만 내려가면 잠시 쉴 수 있다. 그러나 늘 다니는 길이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다. 구불구불한 미시령 고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사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미끄러지듯 편안한 주행이 시작되었다. 승객들도 미시령의 아슬아슬한 경치에 잔뜩 고무되어 창밖에 시선들을 고정시키고 있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코너를 도는데 브레이크가 듣질 않는다.

등줄기에 순간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승객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머뭇거릴 순 없다. 운전사는 가속되는 속력을 피하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언덕길을 내려갔다. 가파른 고갯길을 쏜살같이 내려가는 버스, 이제 승객들도 감을 잡고는 비명을 질러댄다. 그러나 30년 무사고를 자랑하는 운전사는 노련한 운전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어가며 이제 마지막 코스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거기만 지나면 언덕길이 시작되니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차,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운전사나 승객들 모두가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 길 한복판에 한 떼의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는데, 계속되는 버스 경적 소리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길 한편으로 피했다. 그런데 유독 한 꼬마아이만 갈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다. 모두가 소리치고 아우성인데 아이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 있다. 운전사는 순간 생각했다. 저 아이를 치고 나가야 할까? 아니면 저 아이를 피해 길 아래 낭떠러지로 돌진한다? 그러면 저 많은 승객들은 어쩌란 말인가? 운전사는 굳게 결심한 듯 입을 꾹 다물더니 아이를 치고 나가 언덕길 위에서 멈췄다.

차에서 뛰어내린 운전사는 쓰러진 아이를 안더니 숲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이를 지켜보던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리며 하나, 둘 차에서 내려오더니 숲속으로 사라지는 운전사를 바라보며 외쳤다. “저 자가 아이를 죽였어. 그 어린아이를 말이야. 그는 살인자야!” “맞아, 그는 피할 수 있는데도 아이를 깔아버리고 말았어.” 그러자 사고를 목격한 마을 사람이 달려와 승객들을 향해 버럭 소리지른다.

“여보시오, 그가 살인자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가 누군지 아슈? 바로 그 죽은 아이의 아버지란 말이오!” 승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놀라운 희생정신이다. 자식을 희생시키며 승객의 안전을 지킨 철저한 직업의식은 과연 비난받아야 할까? 숲속으로 죽은 자식을 안고 들어간 아비의 무너지는 마음을 헤아려나 보았는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단에게 내주고 우리를 구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