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1990년의
어느 날. 그날은 인천 교회에서 합동 결혼식이 있었다. 모든 예식을 끝내고 또 부지런히
짐을 챙겨들었다. 저녁에 있을 대구 실내체육관집회를 인도하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운전하는
이후용 집사를 재촉해 차를 타고 나섰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따라 경인고속도로가
서인천 인터체인지 부근서부터 심하게 정체되는 것이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좀 넉넉히
길을 나섰건만, 도대체 차는 더 이상 나아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때 심령 깊은 곳에서 ‘길을 찾아라!’고 하는 성
령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돌렸다. 강화도 쪽을 향해 달리다 김포공항으로 빠지면
되리라. 국도는 조금 더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좁디좁은 왕복 1차선 도로로 인해 더욱 답답해 보이는 것이었다.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차량들,
그리고 째깍거리며 마냥 지나가 버리는 시간들.... 그런데 얼마 있자니 꾸물거리던 그 움직임마저도
아예 멎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출발 시간은 다가오는데, 침이 마른다. 속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하나님
이거 어찌합니까!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라고 증거 하려는데, 제가 이제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습니다.
제게 길을 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차에서 한참을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오토바이? 오토바이라...” 그렇다! 오토바이가 있다. 오토바이가 있다면
차가 아무리 막힌데도 그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면 된다. 그러면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으리라!
그래서 하나님께 오토바이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잠시 후, 멈춰 선 차를 지나 오토바이 한
대가 차창 밖을 스치듯 지나간다. ‘어... 저거 오토바인데... 저거 내가 하나님께 구했는데....’
저 멀리 사라지는 오토바이를 그저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네가
오토바이를 보내 달랬으면 밖에서 기다려야 할 것 아니냐? 왜 차에 가만히 앉아서 도와달라고만
하는 거냐?” ‘그렇지, 내가 오토바이를 달라고 기도했으니 밖에서 기다려야지 어리석게 앉아만
있었구나!’ 깨달은 순간 즉시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다 못해 냅다 뛰었다. 김포공항을 향해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순 없쟎은가!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에게 더욱 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라고
내가 그토록 전하지 않았던가!(롬 9:18)
그때 당시엔 몸도 돌보지 아니하고 뛰어다닌 덕(?)에 몸무게가 56Kg밖에 나가지 않던 터였다.
밤잠도 안 자고 부르짖으며 또 영혼을 살리러 이곳 저곳 전국 방방곡곡을 옮겨 다니느라 몸이 몹시도
쇠잔해 있을 때였다. 그러나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 올라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도 싶었지만
더욱 이를 악물고 뛰었다. 눈을 감으면 대구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성도들이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뛰었다. 한참을 뛰는데 뒤에서 ‘뚜뚜뚜뚜’ 하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오토바이다. 너무나 기뻐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막무가내로
사정했다. 공항을 가야하는데 길이 막혀 어떡하느냐고, 그러니 공항까지 태워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그런 사정도 듣는 둥 마는 둥 뒤를 가르키며 쌀을 배달해야 하니 태울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냥 출발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기회인데 이렇게 쉽게 놓칠 수 있겠는가! 오토바이 뒤를 붙잡고 같이 뛰었다. “아저씨, 아저씨!”
“아이참 빨리 놓으세요. 뒤에 쌀이 있다잖아요. 왜 자꾸그러시는 거예요!” “헉헉, 저 나 좀
태워 주세요. 난 목사인데 집회 인도하러 대구엘 가야합니다. 헉헉,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제발 좀 태워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늘어선 차들에선 스르르 문이 열리고 그 위로 하나 둘씩 사람들이 고개를 내민다.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난 지금 무슨
일이 있어도 대구엘 가야 한다!’ 내 이름을 자랑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거기 병들고 소외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쁨을 주길 원했다. 자유를 주길 원했다.
그걸 선포하러 가야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아저씬 나의 그런 행동에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아저씨는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듯이 쭉 훑어보고는 한 마디 툭 내뱉는다. “정말 지독한 분이시네요.”
그리고는 어느 가게에 쌀을 내려 두고 나를 태워 주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그 기쁨이란! 상상해 보라! 오토바이를 붙잡고 통사정을 하며 내달리는 모습을.
또 희멀건 신사가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양복자락을 펄럭이며 쌀집 오토바이에 그것도 짐칸에 올라앉은
모습을 말이다. 그러나 가는 동안에도 기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거반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비행기야 멈춰라! 내가 간다.” 비행기 출발이 조금
더뎌지기를 기도하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도로에 서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누비고 논두렁을 비켜 지나
샛길로 해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신나게 내달렸다.
마침내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발 시간을 한참을 넘겼음에도 대구행 비행기가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난 그 비행기를 타고 원 없이 약속의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의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사건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길 원하고 자랑하길 원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사 6:8). 또한 그런 자들에게 능력과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 주신다. 나는 소망한다. 내 속에 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영혼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기를. 오히려 더욱 타올라 하나님을 위해 산화하기를 말이다.
- 이초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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