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신앙은 현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내세를 위해 있는 것이다.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고 해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보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 병이 낫는 등 여러 체험은 기도 응답에 대한 주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다. 곧 믿음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주신 것이다.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소경이 눈을 떴다 할지라도 이것은 선물로 받은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에 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하늘에서의 날들을 위해 존재한다. 이 땅에서 도무지 응답받는 일이 없고 성공한 일이 없다 할지라도 주 예수를 믿는 자는 그날에 성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날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
여름에 그토록 무성하던 나무도 가을에는 반드시 단풍이 진다. 그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그러다 봄이 돌아오면 다시 새잎이 돋아난다. 현재 가난한 사람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고 성공할 때가 있다. 또한 오늘 성공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낙엽 지듯 실패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성공했다고 자만할 필요도, 실패했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다.
귀신의 최종목적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요, 사업에 실패케 하는 것도 아니다. 귀신의 목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와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병으로 고통을 주고, 또 가난하게 만들어 예수를 포기하게 하려고 귀신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롬8:35~39).
성경은 “네가 왜 이런 죄를 지었느냐?”고 추궁하지 않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신다. 곧 복음은 죄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이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기 영혼을 도모하며, 또 소망을 굳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이 현재 우리가 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임을 발견했다. 그러기에 그는 육신에 유익하고 고상하다고 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보화가 있는 밭을 발견한 자가 그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능력은 이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도 더 큰 재산이다.
이 세상은 마귀가 자기의 전성기라 극성을 부리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최후의 전성기가 곧 도래된다. 그때는 우리의 영원한 전성기가 될 것이다. 지금은 고난 받는 종이지만 예수 오시는 날, 우리는 왕 같은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로 시작한 그 마지막 결과가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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