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특권이다
3, 4월 달력을 펼치니 액자에 담긴 목사님의 메시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도 바꾸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한나로 성태치 못하게 하신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뜻을 돌이켜 잉태케 하셨다. 히스기야 또한 하나님께서 죽으리라 말씀하셨으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여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다.
목사님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비유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요(사62:6~7),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신다(삼상12:23). 또 하나님은 엘리야가 기도로써 하늘 문을 여닫는 기적을 일으켰으나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받은 성령이나 여러분이 받은 성령이나 똑같다.”고 말씀하셨다. 즉 엘리야나 목사님이나 기도로써 역사를 이룬 것 같이 우리도 기도하면 동일한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권면하시는 것이다.
한 마리의 여우가 토끼를 쫓는데 잡을 수 없었다. 토끼보다 빠른 여우가 토끼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여우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뛰지만, 토끼는 살기 위해 뛰기 때문이다. 무엇을 이루고자 원하는가? 그렇다면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하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부르짖는 나에게 응답하시며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시며(렘33:3), 밤낮 부르짖는 자들에게 응답하신다(눅18:7)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김상욱 목사
하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얼마 전, 갑자기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6주나 걸리는 공공기관의 개인 심사를 마치고 나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매일같이 부동산을 내 집 드나들 듯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시지요? 저희가 기도한 집은…’, 그림 그리듯 기도한 내용을 떠올리며 찾기를 며칠, 힘들게 괜찮은 한 집을 찾아 서류를 넣고는 한숨 돌리고 있는데, 이틀이 지나서 전화가 왔다. 집 소유주가 계약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는데….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히려 맘이 기쁘고 시원했고, 하나님은 그날 목사님의 설교, ‘믿음은 꿈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를 통해 확답을 주셨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는 서류를 넣어야 하는 마감일 당일에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을 찾았다. 기도한 대로 집안 인테리어와 자재, 채광과 바깥 자연환경을 비롯해서 층수, 하다못해 전등 소재와 장식, 스위치 하나까지. 분명 몇 달 전에 한 번 봤던 집인데 그간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집으로 바꾸어 놓으셨다. 알고 보니 소유주가 바뀌면서 가격은 그대로 하고 새롭게 리모델링한 것을 우리로 보게 하신 것이었다. 그제야 집을 찾는 동안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들의 이유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웬만큼 마음에 들어서 ‘내일쯤 서류심사 끝나면 바로 계약해야지’ 했던 집이 왜 우리가 보고 나서 곧바로 다른 사람이 계약해버렸는지, 서류심사를 기다리던 집은 왜 갑자기 소유주가 계약을 안 하겠다고 통보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이로부터는 시간도 없는데 너무 고른다는 식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왜 마지막 날까지 찾게 하셨는지. 늘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져 가는 것이 기뻤다.
그렇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고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내 길보다 높기에(사55:8~9),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의심치 아니하면 오늘 안 되는 일도 내일은 될 수 있고, 지금은 절망적인 듯 보여도 소망을 품은 채 기대하고 인내할 수 있으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기만 한다면 매일 기쁘게 좁은 순례의 이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 삶이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특권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오늘도 고백해본다. 하나님, 당신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오늘도 당신을 신뢰합니다.
이국진 사모
영적 진공상태는 위험하다!
기도원 집회 때마다 우리는 영적인 보약을 든든히 채워 넣고 돌아온다. 온갖 낙심과 공허한 마음을 성령의 충만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답과 결단의 시간이 된다. 기도원에 있는 동안은 하루 종일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두움이 잠입할 겨를이 없다.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상태는 혼돈과 어두움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혼돈, 공허, 어두움을 빛으로 채우셨다. 그 빛은 참 빛이라 생명을 주고 어두움을 물리치며 진공상태를 채우신다. 불교에서는 비움을 강조한다. 모든 정욕을 비워내는 ‘무’(無)의 상태를 강조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그 비움(빌2:7)은 공허한 無의 상태가 아니라 낮추심이고 겸손이셨다.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는 믿을만한 것이 못되어서,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릇된 결정을 하기 쉽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에 성령 없이 온전한 자유의지를 활용할 수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롬3:10),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입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고(마15:11,18), 그 어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렘17:9)이라 하신다. 이렇게 인간 안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부패성은 내어버려두면 둘수록 점점 더 부패되기 마련이다. 마음을 비우고 공허한 상태는 깨끗해 보이지만, 그런 영적인 진공상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경고하신다. 일곱 귀신이 들어와 공허한 상태를 재점령해 버린다(마12:43~45). 우리의 마음을 기도와 말씀 없이 공허한 상태로 비워둔다는 것은 귀신들이 역사할 장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 비워서 될 일이 아니라 채워야 될 일이다. 성령으로, 그것도 ‘충만히!’ 채워야 한다.
잔치 뒤에 도둑이 든다고, 기도원 집회 후에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으로 심령을 채우지 않으면 또 넘어질 수 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기도원집회 마지막 날에 항상 귀신을 제압할 권세와 무기로 무장시켜 세상으로 내보내시는 것이 그 이유 아니겠는가?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온유함의 도구 ‘실패’
성경은 모세를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이 사람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그러나 모세는 본래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동족 히브리인을 치는 애굽인을 때려죽이고(출2:12) 미디안 땅으로 도망간 혈기왕성한 야생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야생마가 힘은 좋지요. 그러나 힘이 좋다고 그 힘만 보고 야생마를 타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힘은 있는데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야생마 같은 사람을 하나님은 고난과 실패를 통해 만들어갑니다. 바로 모세의 삶이 그랬습니다. 고난을 통해 변화된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법을 배웠고, 입이 둔한 자로서 순종을 배워 주인의 뜻에 잘 길들여진 온유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따스한 햇볕이 같은 시간에 진흙과 얼음 위에 내리쬡니다. 그런데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햇빛을 받은 진흙은 굳어갈 때, 얼음은 물이 되어 녹아내립니다. 같은 은혜 안에서, 같은 고난 속에서 누군가는 녹는데, 누군가는 더 강퍅해집니다. 마치 애굽의 바로 왕처럼 말입니다.
사실 성도는 하나님께 성공만을 보장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함과 함께 고난도 주시는데, 이 모든 것이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고난과 역경은 모든 사람이 거치는 필수코스입니다. 어차피 모두가 거치는 과정이라면 좌절 속에서 원망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법과 순종을 배워 만들어져가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면 결국 그 실패들은 나를 만들어가는 도구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인생의 문제는 해답을 찾아서 풀리는 게 아니라 내가 크고 넓어져 그게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음으로써 풀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해서 안 되는 말 10가지
1. “잘 해봐라.”- 비꼬는 말
2. “난 모르겠다.”- 책임 없는 말
3. “그건 해도 안된다.”- 소극적인 말
4. “네가 뭘 아느냐.”- 무시하는 말
5. “바빠서 못한다.”- 핑계의 말
6. “잘 되어가고 있는데 뭐하려고 바꾸느
냐.”- 안일한 말
7. “이 정도면 괜찮다.”- 타협의 말
8. “다음에 하자.”- 미루는 말
9. “해보나 마나 똑같다.”- 포기하는 말
10. “이제 그만 두자.”- 의지를 꺾는 말
말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위의 말이 나온다는 것은 생각이 썩었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결국 죽고 맙니다. 생각이 뿌리일진대 생각이 썩은 자에게 기대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렘6:19).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 환자의 네 친구들을 볼까요?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메고 온 그들의 우정도 아름답지만, 그들의 생각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들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그만 두자’라든가, ‘못하겠다’라든가 ‘다음에 하자’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예수님 앞에 이 친구를 데려다 놓자’라는 긍정적인 말, 적극적인 말, 희망적인 말을 했기에 지붕을 뚫어 친구를 달아 내리는 지혜가 발휘된 것입니다.
말이 씨입니다. 씨는 작정하고 뿌려도 나고 실수로 뿌려도 나게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무씨를 뿌리면 무가 나고, 배추씨를 뿌리면 배추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씨를 뿌렸는데 배추가 날 리 있겠습니까?
위의 10가지 말은 하지 맙시다. 그 씨가 날까 두렵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
예수중심편집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