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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오직 믿음의 동반자는 순종뿐이다 (삼상15:29)

998호 · 2019-04-14

기도원집회 중 상담시간에 어느 분이 제게 “목사님,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분에게 제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왜 이해를 못해요? 나는 다 이해가 되는데.”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당연하지요.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합니까?”라고 말해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입니다. 어찌 피조물이 창조주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는 마치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고, 도끼가 찍는 자를 이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이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일들이 인간의 이론이나 생각, 논리와 대립하고 마찰음이 나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남자 없이 여자가 아이를 낳고, 어떻게 죽은 지 사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송장이 다시 살아나고, 어떻게 해 그림자가 뒤로 가고, 어떻게 모세의 팔이 올라가면 전쟁에 이기고, 어떻게 지팡이를 내밀었는데 홍해가 갈라지고, 어떻게 소리만 질렀을 뿐인데 여리고 성이 무너집니까? 이건 아인슈타인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풀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실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일어나고 있느냐? 바로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 명령에 묻지도 않고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말 짐을 꾸려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셨고, 경수가 끝난 아내를 통해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아들을 얻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이해했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순종했더니 점차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구나.’ 하고 점차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0세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묵묵히 순종한 것입니다. ‘또 한 번 큰일을 이루시겠구나.’ 생각한 것입니다.

인간의 쥐꼬리만 한 지식으로는 하나님을 알래야 알 수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기 때문이며(전5:2),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와 같기 때문입니다(사55:8~9). 그래서 신앙의 자세는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겼습니까? 그런 지식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1:1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아멘’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순종’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순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곧 순종하지 않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약2:26). ‘물을 떠다 줘라’ 하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떠다 줘야 합니다. 그러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지팡이를 내밀라’ 하면 토 달지 말고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다가 갈라져 길이 나게 됩니다. 중풍으로 입이 돌아갔어도 간증하라는 주의 종의 말에 단에서 간증했더니 입이 제대로 돌아왔다고 서울교회 염상섭 장로가 간증하지 않습디까?

그런데 다들 나아만 장군처럼 굽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라’는 엘리사의 말에 화를 냅니다. ‘이래봬도 내가 한 나라의 일등공신이요 장군인데, 내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에 들어가서 나을 거면 수질이 좋은 다메섹 강에 들어가지 무슨 요단강물이냐?’는 겁니다. 그러나 그의 종은 믿음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낫는다는데 요단강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냐’고 나아만에게 아룁니다. 종의 말에 나아만은 마음을 고쳐먹고 순종했더니 고름이 줄줄 흐르던 문둥병이 나음을 입었습니다(왕하5:13~14).

자고로 순종하지 않는 자의 특징은 변명과 핑계로 말이 많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모든 사람과 육축까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남겼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15:20~21). 이 말이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니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마땅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조건 다 죽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은 것으로 가지고 와서 제사도 드리고 탈취물을 나누는 것이 효과적일지 몰라도 사울은 무조건 하나님 말씀대로 다 죽이고 돌아왔어야 합니다. 불순종한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오라비를 잃은 두 자매,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돌을 옮겨 놓아라”(요11:39)고 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며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능력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돌을 옮겨놓으니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라면 가고, 가지 말라면 안 가는 게 순종입니다. 아시아로 가려던 바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유럽 쪽으로 발길을 돌리더니 사도로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라는 말씀이 있고, ‘애통하는 위로를 받는다’(마5:4)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있을 때, 어려움이 있을 때 울면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럼 울면 다 되게?’ 하면서 따질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애통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바꾼 자들이 많습니다. 한나의 통곡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당신이 닫은 태의 문을 열고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삼상1:10).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곧 죽으리라는 예언을 듣게 된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앉아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살려달라고 했습니다(사38:14). 그러자 하나님이 즉시 위로하사 수한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접전 지역에서 죽인 일을 나단이 책망할 때, 다윗은 죄를 깨닫고 통곡했습니다(시6:6).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가 있었고,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가 되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눅7:13~14). 하나님은 눈물에 약하십니다. 그러니 애통하며 기도하여 꿈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을 이해하려말고, 먼저 순종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폭이 점차 넓어질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삼상15:22). 할렐루야!

하나님께 도와달라기 전에

먼저 하나님 편에 서라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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