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지능보다 집중력과 끈기에 있다 (히12:1~3)
성공은 지능보다는 집중력과 끈기에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열매를 따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자가 열매를 거두는 겁니다. 희생 없는 열매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사 쉽게 이뤄지는 것이 없고, 금방 얻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라면을 끓이려고 해도 기다려야 할진대 성공이 그리 쉽게 온답디까? 귀한 것일수록, 좋은 것일수록 쟁취하려면 반드시 고난과 핍박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묵묵히 참는 인내, 핍박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성공의 절대적 요소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믿음의 전당에 오른 허다한 선친들도 오래 참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25년 인내하여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야곱이 20년 세월을 기다려 거부가 되었으며, 요셉이 13년 세월을 참아 애굽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비가 올 때까지, 가랑이 사이로 머리가 들어갈 때까지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었고(왕상18:19~46), 엘리야를 좇던 엘리사는 엘리야의 ‘가라, 가라’는 말에도 참고 인내하며 엘리야를 끝까지 좇더니 그보다 갑절의 영감을 얻었습니다(왕하2:1~14).
눈뜨기를 소원했던 소경 바디매오는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귀를 막고 포기하지 않더니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 광명을 찾았고(막10:46~52),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친구에게 떡을 구하는 자나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도 수치와 고난 중에도 인내하여 마침내 소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개 취급을 당했지만(막7:27)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여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모두 성공을 이루고 소원하던 바를 얻은 것은 인내와 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왜 하나님이 뱃사람인 베드로를 사용하셨을까요? 왜 바울을 택하셨을까요? 그들의 끈기를 보신 것입니다. 고기가 잡힐 때까지 밤이 맞도록 그물질을 하는 베드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겠다고 다메섹까지 달려가는 끈기를 보시고 ‘쓸 만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디 성경의 인물뿐이겠습니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면서 2천 번 실패했지만 끝까지 연구하여 마침내 그것을 발명해냈고, 링컨도 많은 실패를 인내하여 마침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숱한 모함과 핍박, 고난 중에도 인내하였더니 하나님이 마침내 2천년을 기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무엇에든 시작할 때의 마음을 끝까지 잡으면 성공도 이룰 수 있고, 응답도 받을 수 있고, 천국에도 이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내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는 절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가을에 거둘 수확에 대한 절실함이 없다면 기다리지 못할 것입니다. 뜨거운 태양과 사나운 비바람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기필코 정신’이 인내하게 합니다. ‘박사학위를 따고야 말리라’는 절실함이 인내하게 되고,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겠다’는 절실함이 고통을 인내하게 하고, ‘응답 받고 말겠다’는 절실함이 낙타무릎이 되도록 인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곧 인류구원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기에 고난 앞에서 인내하셨고, 부끄러움도 참아내신 것 아닙니까?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환경을 힘들게 만들어 우리가 목표한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귀의 계략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필코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절실함으로 인내하고 집중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도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지만, 영적 성공을 위해서도 인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앙은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기초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7~11). 야고보 사도는 ‘길이 참으라’, ‘오래 참음’, ‘인내’라는 말로 우리의 신앙에도 오래참고 견딤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농부처럼 참으라고 하십니다. 농부는 가을에 수확할 것을 바라다보고 참습니다. 즉 목표를 바라다보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지자들처럼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받은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사명에 부도내지 않기 위하여 숱한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기필코 이루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욥처럼 참으라고 하십니다. 욥이 당한 고난과 고초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치였습니다. 그래도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내의 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께 그랬듯이 갑절의 복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영·혼·육의 성공, 응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하나님은 절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인내하게 하십니다. 모세를 사용하실 때도 40년이란 세월을 인내하게 하셨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내는 씁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답니다. 달콤한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200번이나 꽃을 왕복해야 얻는 것이랍니다. 4,200번 꽃에서 꿀통, 꿀통에서 꽃으로 꿀벌이 왔다 갔다 해서 꿀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물며 멋진 인생, 아름다운 미래, 달콤한 삶이 그냥 이뤄지겠습니까? 모진 바람이 분다고,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옆에서 비아냥거린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귀는 막고 앞만 보고 달려가면 반드시 일을 이룰 날이 옵니다. 여러분, 안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참지 못하고 엎어버린 겁니다. 아구까지 물을 채워야 하는데 끝까지 인내하지 않고 7부쯤에서 ‘이게 되겠어? 하며 물을 엎어버리니까 안 되는 겁니다. 여리고를 일곱 바퀴 돌아야하는데 여섯 바퀴에도 아무런 징조가 안 보이니까 ‘이건 안 되는 거야.’ 하고 포기해서 안 되는 겁니다. 조금만 인내하면 됩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정신으로 밀고 나가면 절대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6~39).할렐루야!
대를 이을 자식은
곱게 기르지 않는다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잠시 머무는 터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