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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옳을 의)

985호 · 2019-01-13
부르심의 소망

한자를 만든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어떤 글자가 오랫동안 널리 통용되기 위해서는 그 글자를 만든 근거가 뚜렷해야 하는데, 이들이 만든 몇몇 한자에서 창세기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화물선, 여객선, 유조선 등, 큰 배를 뜻하는 船(배 선)자를 보면, 舟(배 주) + 八(여덟 팔) + 口(입 구)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배에 탄 8명, 혹시 떠오르는 배가 있으신가요?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주에 타고 있었던 노아의 여덟 식구였지요(창7:13). 홍수를 뜻하는 한자는 洪(큰물, 홍수 홍)입니다. 이 글자는 水(물 수)와 共

(함께 공)이 합쳐진 글자로, 共(함께 공) 글자에도 八(여덟 팔)이 있습니다. 洪(큰물, 홍수 홍)을 풀이해보면 대홍수가 있을 때에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은 노아의 가족 8명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또 역사를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인 ‘연혁’의 沿(따를 연)에도 水(물 수)와 八+口(8명)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이 글자에서는

“홍수 후에 노아의 가족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창10:32), 즉 노아의 가족으로부터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창조’, ‘조물주’에 쓰이는 造(짓다, 만들다 조)입니다. 이 글자는 土(흙 토)+ 丿(삐침 별) + 口(입 구)+ 辶(쉬엄쉬엄 가다, 달리다 착)으로 되어있는데, 丿(삐침 별)은 생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造(짓다, 만들다 조)는 흙에 생명을 불어 넣어서 말하고 걷게 만든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런 생명체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 즉 아담 외에는 없습니다(창2:7).

이제 가장 중요한 글자인 義(옳을 의)를 보겠습니다. 我(나 아) 위에 羊(양 양)이 있습니다. 바로 내 머리에 양을 이고 있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옳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땅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양 치는 자였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만 열납하셨는데, 그 이유는 히브리서 11장 4절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즉 믿음으로 양을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심을 믿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우리 삶을 매순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조심스럽게 예수님을 머리 위에 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내가 걸어갈 때에 내 머리 위에서 예수님이 편안한 자세로 계시는지, 내가 급하게 달려가느라 예수님이 불편해하고 계신지를 항상 점검하며, 행여 예수님이 떨어질세라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입니다.

‘천문천답, 만문만답이 예수’라고 늘 말씀하시는 이초석 목사님이 저의 목자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정성을 들여 예수님을 머리에 이고 총회장 목사님을 따르는 우리 예수중심교회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예수님께 항상 물어보며,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박영신 성도

rubyday0@naver.com

한라의 핀 샤론의 꽃

상위 1%가 가진 능력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은 수많은 관계 속에 노출되어 있다. 때문에 명석한 머리와 세계적으로 유능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하버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강의는 바로 ‘인간관계론’이다.

미국의 MIT 공대 졸업생들을 추적하여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전문적인 기술과 실력’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15%이고, 나머지 85%가 ‘좋은 인간관계와 타인과의 공감능력’이라고 대답했다. 그뿐만 아니라 스탠퍼드 대학교수 마틴 루프의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들이 비즈니스에서 더 혁신적이었다고 한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신제품 출시나 특허 출원은 물론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사례 모두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과의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교회 안팎에서 겪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이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12:18) 하시면서 인간관계를 중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는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공감(共感)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으로, 같은 마음, 같은 편임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모든 이적과 기사의 시작은 ‘공감능력’에서 출발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예수님은 함께 비통해하셨고, 아파하셨다. 그렇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공감능력(롬12:15)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겸손한 마음’이다. 이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 덕목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공감능력을 갖는다. 겸손(謙遜)은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부족하니 자랑하고 싶은 맘이 줄고, 내 생각만 고집하지 않게 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듣게 된다.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고 실천하지 않을 때 다툼이나 허영이 개입되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겸손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은 하나님을 관계 속에 개입시키면 된다.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낮아지는 마음을 품고 서로의 마음을 같이 하여 생각하면 가능하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을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2:2~4)는 이 성경구절에는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공감’과 ‘겸손’이 모두 담겨있다.

예수님이라면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었을까를 생각하며, 무너진 모든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9).

권정미 집사

jmgoo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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