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공통점
목회 35년차에 들어서면서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살얼음판을 걸은 기분입니다. 아차하면 얼음이 깨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 차가운 물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여 년 동안 해외선교를 하며 단 한 번도 사전 답사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집회를 열어달라는 요청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달려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움도, 황당한 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도 많았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KGB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시베리아에서는 한밤중에 높은 경찰모와 시퍼런 눈을 한 조사관들이 숙소로 들이닥쳐 취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숙소에 가스연기가 스며들어와 질식사할 뻔도 했고, 멕시코에서는 무허가집회라며 집회를 이대로 강행하면 체포하겠다는 통보에 정부허가를 얻기 위해 경비행기에 올라 8시간의 목숨을 건 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호텔을 폭파하겠다는 위협도 있었고, 비행기서 내리는 순간 죽이겠다는 협박도 있었고, 자동차가 뒤엎어져 생사를 오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외친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거룩한 모험이다!” 모험은 담대함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담력’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제가 왜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는 곳이 있으면 담대하지 않습니까? 술 먹고 경찰서 와서 큰소리치는 사람들 보세요. 하나 같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너희들 다 끝장이야.” 그러지 않습니까? 나름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이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담대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9). 이 말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열 명의 정탐꾼 말을 듣고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슴을 찢으며 전한 말이고,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수1:5~6), 이는 모세가 죽은 후에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 이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모두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냥 담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두려워하는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가 저와 함께하는 자보다 크다”(대하32:7)고 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다윗이 기골이 장대한 장수 골리앗 앞에 달랑 물맷돌 3개 들고 나간 것이고,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간 것이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고,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왕 앞에 나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며 담대했던 것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인들 어쩌겠습니까?
여러분, 잘난 사람이 두렵습니까? 돈 많은 사람 앞에 가면 부들부들 떨립니까? 권력 있는 자 앞에 가면 주눅이 듭니까? 그러나 오늘 밤에라도 그들을 거둬 가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들도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두렵습니까? 겁납니까?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사51:12).
저는 눈 같은 목사, 오른 팔 같은 장로가 떠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간다면 레드카펫을 깔아주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떠난다고 교회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떠나야 망하지, 돈이나 권력 있는 자가 떠난다고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떠나버리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이 떠난 자들이, 하나님이 떠난 나라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또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떠날까봐 눈물로 기도했던 것입니다(시51:11).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은 겁쟁이를 쓰시지 않습니다. 담대한 자를 쓰십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드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겁 많고 소심하니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은 쓰시지 않겠네요.”라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담대한 자를 쓰십니다. 대신 담대하지 않은 자,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만들어서 쓰십니다. 어떻게요? 성령을 부어주셔서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십니다.
기드온은 사실 나약하고 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쓰시려하자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5)라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하나님도 기드온이 그런 사람임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미디안 군대에게 붙이실 때 하나님이 먼저 하신 것이 이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삿6:34). 소심하고 겁 많은 기드온에게 성령이 임하니 미디안 족속을 치러 가는 위대하고 용맹한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약하고 부족한 사람도, 아무리 소심하고 겁 많은 사람도, 아무리 못나고 별 볼 일 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면 위대한 사람으로, 능력의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자기도 잡혀 십자가를 질까봐 어린 아이 앞에서 스승인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던 자가 아닙니까? 그런 자가 성령을 받으니 병을 고치다가 잡혀 제사장과 사두개인 앞에 섰을 때 그들이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고 하자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담대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담대하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지 않았습니까?
풍랑이 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려워했습니다. 배 안에 예수님이 계시건만 그들은 믿음이 없기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자연을, 악한 영들을 두려워마세요. 하나님이 성령으로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무슨 일에든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