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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새해

985호 · 2019-01-13

신년사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러분에게서 가장 중요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웃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주는 것은 가격이 없고, 가게 진열대에서 볼 수 없는 선물이지만, 마음을 느끼고 눈에 비친 선물로 여러분이 존엄하게 살고 삶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새해가 큰 일, 큰 승리, 그리고 삶과 시련의 폭풍에도 불구하고 정복할 수 없는 정신을 가져다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꿈이 실현되고 행운이 여러분에게 더 자주 미소 짓기를 바랍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여러분에게 매우 귀중한 경험을 주고, 영감은 여러분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여러분이 항상 범사에 힘과 지혜, 갱신과 순결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는 여러분 가까이에서 자신의 마음과 영혼의 일부를 준 사람들이 고통이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우정과 사랑이 더 깊어지고, 믿음이 더 강해지며, 꿈이 더 밝기를! 그리고 과거의 모든 친절하고 즐거운 행동들이 대담하고 즐겁게 미래를 바라보게 하고, 재능과 선물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여러분 마음속에 언제나 최고, 평안, 그리고 가족 간의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소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평화, 번영, 사랑, 행복, 마음의 평화, 성공, 기쁨, 선량, 훌륭한 건강과 신의 풍요로운 축복을 빕니다.

그리스도와 그를 따라간 자들을 흉내 내면서, 종종 우리 자신에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간단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봅시다.

2019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크라이나 드네프로예수중심교회

담임 슬라바 목사

하나님은 준비하는 분이시다

1992년 8월로 기억된다. 이초석 목사님의 동경 집회가 있어서 나는 주일예배를 마치고 저녁 비행기로 일본으로 향했다. 목사님께는 비밀로 하고 먼저 동경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날 월요일, 나리타공항으로 동경교회 성도들과 함께 목사님을 영접하러 나갔다. 게이트를 나오시던 목사님은 나를 보고 놀라셨다. 어제 서울에서 만났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놀라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목사님을 영접하러 보내셨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그 날 새벽에 기도하실 때 성령님께서 두 벌 옷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계시하셨다고 말씀하셨다(마10:10). 그 음성을 들으신 후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단 벌로 오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다.

하나님은 항상 준비하시는 분이다(창22: 14). 그 때 당시 목사님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더니 속옷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그것도 벤츠600에 호텔도 최고급으로 준비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교하러온 목사가 호텔에서 잘 수 없다며 교회에서 주무셨다. 식사는 먹어도 돈을 내고 먹지 않아도 돈을 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서 식사는 하셨다.

그 때 나는 예수를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1992년 1월 3일 금요철야예배 때 처음으로 예수중심교회에 나왔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서있지 못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신주쿠 역으로 가자고 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모두 목사님을 따라 역으로 갔다. 그 때 목사님께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셨다. 모두 따라하라고 하셨지만 아무도 따라하지 못했다. 그 때 저는 창피함이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왜 저러실까 그만 하셨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그치지 않으시고 지하도를 다니시며 여전이 외치셨다.

그로부터 26년이란 시간이 지나 올해 메일을 보내오셨다. 예수님과 함께 일본을 변화시켜 보자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생각해본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아마도 똑같이 하셨을 것이다. 그 때 신주쿠 역에서 외치셨던 목사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일본을 사랑하셔서 아무것도 모르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던 그 때를 다시 돌아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영혼들을 우리에게 준비해놓으셨다. 그 영혼들을 찾아보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제 우리 교단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영혼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찾읍시다. 사랑합니다.

일본예수중심교회 김장길 목사

성령에 감동된 진리를 말하라

전지전능의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고 지으신 영적인간 존재의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음에 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계명은 하나님의 영생의 말씀이셨으니 그 말씀을 받은 아담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생에 참여할 복을 받았으나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말을 듣고는 마귀와 함께 영멸에 처해지는 불행한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과 등 돌린 아담의 후예는 뱀이 쏟아내는 홍수 같은 말에 휩쓸리면서 그 말과 경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돌이킬 수 없는 제 무덤을 파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때가 되면 영으로 전해지는 진리를 주시려 하셨다.

때가 이르러 하나님은 돌에 새긴 율법을 모세의 손에 들려 주셨으니 말씀이 형상으로 나타내실 예언이었고, 그들 중에 허락하신 성막은 마침내 하나님이 그들 진중에 들어오심으로써 그들은 그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는 소망을 가졌으니 메시아를 기다림이었다.

마침내 말씀이 육신으로 현현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니 죄인 된 인류는 드디어 하나님을 뵙게 되었고, 그가 입으로 선포하신 말씀에 귀신이 통곡하며 떠나고 그 말씀이 인간의 귀에 들려지는 이것이 바로 생명이요 변혁인지라, 죽은 자가 홀연히 살아나 생명의 영역으로 인도를 받게 된다. 이것이 인류에게 전해진 복음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지막 긍휼이시다.

성경은 인자가 세상에 임하시는 길과, 아들이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일과, 그의 제자들이 다시 오실 심판주를 증거한 기록이다. 말은 일회성이어서 와전이나 가감될 수 있으나 기록은 말의 가치를 거의 영구적이게 할 수 있다.

그가 오셔서 그의 고단한 육체로 인류가 가야할 새롭고 산 길을 내셨으니 곧 영생길이다. 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자신의 몸을 세상에 두려 하셨으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신약교회다. 성령이 믿는 자의 몸에 임하시면서부터 성령은 강풍과 불꽃을 동반하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땅 끝과 모든 족속에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위해 목 베임을 받는 제자들을 양육해낸다(계12:17).

오늘 우리는 성령에 감동된 진리를 말하자. 이는 성경 기록자들과 동일한 영감이니(벧후1:21) ‘누구든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 하심과 같고(벧전4:11), 우리 심령에는 진리의 말씀이 항상 샛별같이 떠올라 있음이다(벧후1:19). 성령은 우리가 할 말을 가르치시고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기억나게 감동하시고(요14:26) 이에 순종할 때 우리 행위에서는 기사이적이 동반된다(막16:17~20).

그리스도가 친히 들어와 사시는 우리 몸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게 하자(빌1:21). 적당하게 세상과 윤색된 말로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 줄 수 없다. 세상은 이론이 없어 고통이 아니라 진리를 몰라 허둥댄다.

성경이 전체 인류에게 생명이 되듯, 우리가 남기는 기록도 그리되게 해야 한다. 고단한 생활의 위로나 일회성 기호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늘 주님의 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록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 외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뛰게 되어야 한다. 성경을 닮아 품격을 높이고 그 진리의 위치를 보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훌륭한 교회마다 주님이 원하시는 더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가 길러지도록 일조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늘 상기하자.

해가 바뀌어도 해 아래의 인생행로는 아비규환을 계속할 터이나 우리, 예수중심의 독자 제위와 그 선한 경영 위에 긍휼의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시기를 기원하며 신년사에 가름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대전예수중심교회 박덕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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