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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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말이 씨가 된다

983호 · 2018-12-30
오늘의 메시지

언젠가 목사님께서 선물 받으신 소형 녹음기를 하루 동안 몸에 지니시고 언어생활을 녹음해보셨다고 한다. 하루를 보내신 후에 녹음된 언어들을 들어보시니 초긍정적이요, 믿음의 언어였다고 하셨다.

말씀에 은혜를 받은 종은 즉시 초소형 녹음기를 구입해서 동일하게 하루 동안 몸에 지니고 언어생활을 녹음해보았다. 하루를 지낸 후에 들어본 녹음된 언어들은 나 자신을 너무도 부끄럽게 했다. 어떻게 목사의 입에서 이렇게도 불만이요, 불평이며, 세상적이고, 불신앙의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수를 줄였다.

성경은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잠17:28), 또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말씀한다(잠18:21).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로 창조하시고, 말로 축복하시며, 말로써 약속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은 말로 기도하고, 말로 전도하며, 말로 축복하여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말씀하신다(막11:23~24). 목사님은 내가 한 말이 나를 둘러매며, 그 말을 타고 달린다고 교훈하신다.

이제 한 해를 보내며 나의 언어생활은 어떠했으며,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입에 재갈 먹이며, 파수꾼을 세워 사람의 말이 아닌 창조적 믿음의 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입술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어야 할 것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신앙논객::

힘써 하나님을 알자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라비 재커라이어스(Ravi Zacharias)가 자신의 책에 쓴 일화다. 그는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영국의 베드포드(Bedford)라는 도시를 방문했다. 그 도시의 중심에는 세계 역사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또 그만큼 많이 읽힌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라비와 그의 가족들은 그의 생애와 출간된 모든 언어의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물관을 나서며 라비는 안내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간단하고 작은 책이 이렇게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다니 놀랍지 않나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음, 맞는 말인 것 같네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어요.” 그 말에 기절할 정도로 놀란 라비가 그 이유를 묻자, “글쎄요, 너무 어렵더라고요.” 라는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도시의 상징적인 인물이 쓴, 세계적인 명성의 작품을 전시한 박물관을 안내하는 직원이 정작 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니,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정작 하나님의 사람이라면서 그 분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같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아멘’은 잘하는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세계에서 천로역정보다도 훨씬 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어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 성경을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하는가? 어쩌면 그 안내 창구 직원의 모습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소개하며 천국 가는 길을 안내해야 할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이제 새해가 다가온다. 혹시라도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뜻을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면, 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깨닫는 일에 소홀했다면, 다가오는 2019년에는 좀 더 힘써 하나님을 알자. 손에 보물을 쥐고 있어도 그 가치를 모르면 그것은 그냥 아무 가치 없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생명의 말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누구나 다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다. ‘향수’(nostalgia)라는 말은 원래 ‘고향이 주는 고통’이란 뜻의 헬라어 합성어이다. 가고 싶으나 갈 수 없는 마음의 병!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막상 가 봐도 왜곡된 회상들만이 존재하는 고향 현실에 실망하기 일쑤다. 그저 내가 알던 그 추억어린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에 안타까워할 뿐이다. 성경에서 소돔성을 탈출하는 롯의 아내가 보인 행동은 과거로부터의 탈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과거와 친숙한 이유는 과거만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을 사는 존재인 인간은 늘 한 방향으로 가야한다. 미련어린 과거를 뒤로하고, 치열한 현재를 살며, 두근거리는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한다. 과거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도록 하나님이 만드셨다. 선악과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다시는 에덴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화염검으로 출입문을 봉쇄해버리셨다. 돌이키고 싶은 과거의 죄와 실수에 대한 기회조차 주지 않으셨다. 과거 에덴의 향수는 사라지고, 쫓겨난 에덴 동쪽에서 기다리는 건 힘겹게 개척해야할 척박한 땅과 인간의 수고로운 미래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인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이 인류의 미래까지 다 바꿔버릴 것이라 약속하신다(창3:15). 시간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은 시공을 초월해서 적용된다. 2천 년 전 십자가 사건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두 영향을 준다. 예수님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참으로 신비이다. 시간의 제약을 받고 사는 인간에겐 과거가 중요할지 모르나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께 시간의 구분이란 무의미할 따름이란 말이다.

우리는 쟁기를 손에 잡은 현실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다(눅9:57~62). 어떤 미래인지 몰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것이다. 과거의 실패와 성공조차 이제 모두 묻어두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야 한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7:10).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울림 있는 삶

회개의 선물

20대 초반 성품이 온순한 남편을 만났다. 고아원에서 자라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단다. 그의 따뜻한 매너에 동정심인줄 알면서 삶의 인연을 맺었지만 일찍 알코올에 젖어버린 남편은 2층에서 추락 후 허리골절과 무릎관절수술로 직장생활을 거의 못했고, 술에 의지하여 가족을 힘들게 했다. 아플 시간도 없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야했던 나는 더욱 남편을 증오하고 무시하고 한마디로 사람의 탈만 쓴 악녀였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 남편은 급기야 세숫대야에 많은 피를 토했다.

그날 밤 나의 회개가 시작되었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난 남편은 현관문을 향해 시커먼 옷 입은 사람들이 왔다고 문 잠그라 몇번씩 되풀이했고, 직감적으로 저승사자라 생각한 나는 뜬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토록 저주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갑자기 그가 불쌍해졌고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그 눈물은 다음날 오후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왜 만들어졌나? 왜 이런 슬픔이 존재하는가? 죽으면 그만인데, 죽음 후엔 어떻게 되는가?…’ 깊은 잿더미 속에서 해맬 때 갑자기 그 동안 남편에게 악하게 대했던 장면들이 하나씩 하나씩 기가 막히게 한편의 영화처럼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가슴이 찢어지듯, 녹아내리듯 애통해할 때 누군가 이마를 계속 쓰다듬어주었다. 어린 딸인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딸은 곤히 자고 있었고, 지금은 그 손길이 예수님의 위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숨이 막히고 아무리 들이마셔도 산소가 충족되지 않는 증세가 24시간 주기에서 5분, 3분으로 빨라졌고, 전 직장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했다. 실제로 이런 증상으로 누가 죽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는데 나 또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나의 강한 의지도 흘리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었고, 다음날 의아해하는 직장 동료들 앞에서 그동안 남편에게 했던 악한 일을 통회 자복했다.

그날 오후 밥을 푸던 중 쌓아올린 밥그릇이 스르르 아래로 미끄러지자 놀란 나는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고 갑자기 두 팔을 벌리며 한 바퀴 반을 돌았으며 허리는 뒤 로 45도로 확 꺾였었다. ‘내가 왜 이러지? 어…, 어…, 이러다 뇌진탕에….’ 주위에선 “평생 맞고만 살았나? 귀신이 들어갔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주저앉은 나는 눈에 힘이 빠지고 허벅지가 풀리면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나는 내 병이 나음을 느꼈고 즉시 복용하던 심장약을 버렸다. 가벼워진 몸이 날아갈 듯 했고 주변에서 들리던 소음이 너무나 청명하게 들려 귀를 몇 번씩 후비곤 했다.

다음날 남편의 죽음을 예견하고 장례절차를 아파트 경비원과 의논하던 중 같은 아파트에 사는 두 부부가 다가왔고 곧 예수중심교회로 전도되었다. 친척도 별로 없는 남편에게 기도라도 많이 해줘야 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따라왔는데 하필 맨 앞자리에 앉았고 강력한 확신을 선포 하시는 목사님의 위력에 나의 아집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후 성경이 나에게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귀신의 속성과 나의 삶을 주관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 속에 믿음이 성장해 갔다. 남편은 11년여의 긴 시간 알코올 치료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지금은 퇴원 하여 가게 일을(식당) 도와주고 있다. 가끔 옛 습성이 되살아나려하면 회개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럼 바로 눈가에 눈물이 맺히면서 옛 습성을 쏟아버리게 만든다. 가족의 관계회복과 화목을 유지시켜주는 회개의 선물, 당신도 받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기도를 많이 시키시며 회개 의 기회를 주시는 목사님께 더욱 감사드리고, 수많은 교회 중에 예수중심교회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추성숙 집사

참된 깨달음

연말결산은 내 삶의 고백!

제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난 요일밖에 몰라, 오늘이 며칠이에요?” 주일예배를 기점으로 저의 한 주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런 날들이 흘러 올 한해도 어느덧 12월의 끝자락에 와 있고, 2019년도 새해가 저와 여러분을 향해 손짓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는데 연초에 시작된 교구성도 현황표를 꺼내놓고 총결산을 합니다. 천국가신 분들, 전도되어 오신 새 신자들, 이사 오거나 가신 분들, 또 개인적으로 수첩과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들을 체크하며 정리합니다. 정리하다보면 어떤 일들은 뿌듯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일들은 후회로 남기도 합니다.

어느 해인가! 그 날도 연말결산을 하던 중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붙들고 한없이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명단을 정리하다가 1년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이름을 지우려는데 내가 지워버리면 하나님 아버지도 지우실 것 같아 결국 그 이름을 지우지 못하고 교구성도명단에 다시 적어 넣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어떤 사람이 종들을 불러 당신의 소유를 각기 그 재능대로 맡깁니다. 다시 돌아온 주인의 관심은 오직 하나, ‘남겼느냐’입니다. 남겼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 남기지 못했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그 어떤 핑계도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두렵습니다. 이 말씀은 저 스스로도 핑계치 못할 제 사역을 총결산해주는 말씀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서 결산하는 그날까지! ‘시작보다 마지막이 더 좋은, 처음보다 끝이 더 복된, 첫 마음보다 끝 마음이 더 아름다운’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변함없이, 흔들림 없이 살아가길 소원해봅니다.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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