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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준비된 자만이 영광을 맛본다(딤후4:1~8)

979호 · 2018-12-02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9:27). 이 말씀은 우리 삶에 유통기한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육체, 곧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게 되어있습니다. 전도서 12장에 전도자가 표현한대로 겉사람은 날로 낡아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죽으면 만사가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죽음 다음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히9:27). 사람은 영존체이므로 1차 죽음인 육신을 벗어던지고 나면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살아 하나님의 백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때 이생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요5:29).

물론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은 자들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권속들이 여기까지는 다 압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천국(天國)은 말 그대로 하늘나라입니다. 어느 나라나 계층이 있듯이, 천국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체험한 분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천국에 가면 집이 제각각이라고 합니다. 누구는 어마어마한 성에서 사는데, 어떤 이는 초라한 집에서 산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이 땅에서 얼마나 준비했느냐, 곧 이 땅에서 예수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근래에 제 친구 중에 이민을 가는 사람이 있는데, 보니까 아주 철저하게 준비합디다. 수명이 다하면 우리도 이민을 가게 됩니다. 어디로요? 천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취득한 천국시민권을 당당히 내밀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준비 없이 간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누군가 그럽디다. 준비 없이 가면 개털모자나 쓰고 산다고요.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천국에 온 것만으로 만족하며 아무것도 준비 없이 천국에 간 강도처럼 사시겠습니까?

요즘 이런 말들을 합디다. 준비되지 않는 노후는 저주라고요. 갈수록 수명은 늘어나는데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늙어서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노후에는 마침표라도 있지요. 만일 영원히 사는 사후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여러분, 저축할 때 이자가 한 푼이라도 많은 쪽으로 들지요? 주의 일 중에서도 이자가 높은 게 있습니다. 바로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왜 전도하는 일에 목숨까지 내걸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딤후4:7~8). 그날 하나님이 친히 씌워줄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바울은 전도에 매진한 것입니다.

이는 바울에게만 준 특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상과 특권이 놓여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전도하면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강권하고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2~5).

왜 제가 본토와 아비와 처자를 뒤로 하고 재산을 무 자르듯 잘라가며 사람취급 못 받으면서도 복음전도에 힘쓰는지 아십니까? 천국에 가서 왕권을 누리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열 두 지파를 심판하고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려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눅22:30). 저는 제가 그 날에 받을 상이 무엇이며, 제가 앉을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뭣 하러 멀미가 날 정도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빈대에 물리며 못 먹고 못 자면서 세계를 누비겠습니까?

사람들이 그 날에 받을 상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대충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교장이 아닙니다. 교회가 할 일은 영혼구원이며, 그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아니면 똑똑하고 많이 배운 자들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지만, 미련하고 연약하고 지혜롭지 못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에게 상 받을 기회를 주시려고, 면류관을 주시려고 그러신 것입니다. 기회를 주셨는데도 못 잡는 자는 어리석은 자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11월 28, 29 양일간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집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그 집회장소를 가득 채우느라 ‘수고했다’, ‘잘했다’ 칭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여러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고, 그 수고는 하나님이 치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치하하면 그 공력이 다 불타버릴 것이기에 저는 입을 다물겠습니다. 다만 그곳에 참석한 자들이 신앙의 열매를 맺을 때까지 더욱 노력해주십시오. 그 열매로 인해 하늘나라에 상이 쌓일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의 말씀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을 상을 위해 뛴 것이니까요.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한 것이듯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면서도 이를 기뻐하사 거기에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주시니 이것이야말로 은혜 위에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가진 부귀와 명예와 지식마저도 다 배설물로 여겨 버렸던 사도 바울도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고 말함으로 그 날에 받을 상에 연연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날에 받을 상에 관해서는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잘 살고 멋지게 사는 꿈을 꿔야 합니다. 꿈만 꿀 것이 아니라 이민 갈 준비를 철저히,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도뿐 아니라 맡겨진 일, 맡은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고전4:2). 제가 직분을 줄 때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는 말씀을 아울러 줍니다. ‘자신을 위해 충성하라’는 겁니다. 주의 종 길을 가든, 안내위원을 하든, 성가대를 하든, 반주를 하든, 교사를 하든 목사님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못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이 다 보시고 더 큰 상으로 준비하실 것이고, 이 땅에서도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선교팀의 김성자 전도사에게 ‘이제 나이가 있으니 그만 따라다니라’고 했더니, ‘꿈에 보니까 한은택 목사와 송초현 전도사의 상이 너무 많아서 자기도 그런 상을 받고 싶으니까 제발 그런 소릴랑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김 전도사처럼 그 날에 받을 상을 사모하는 자가 되십시오.

더불어 드리고 싶은 말은 철저히 준비해서 결혼도 하고, 사업도 시작하세요. 취직 안 된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고, 자식들 물려줄 생각 말고 노후준비도 하세요. 준비한 자만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할렐루야!

매사 최선을 다해야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준비하지 않는 자는

망하기로 준비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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